Friday, January 30, 2009

울음에 대하여

울음에 대한 울음이 있다
무시하자
모두 그러니까

말로 해야 하지만
울음으로 대신하고픈 것에 대한
울음이 있다

무시하자
모두 그러니까

말로 나오지는 않겠지만
울음으로 나와야 하는 것에 대한
울음이 있다

자, 되었다

무시하자. 무시하자

무시할 필요가 없었으면 좋겠다

앤 스티븐슨
Trans. Gene

Monday, January 26, 2009

리마에서 있었던 일

리마에서 한 사내가 경찰에 연행되었다. 아내를 찾기 위해 안데스 산에 오르겠다고 고집을 피우다 그리 되었다. 사내는 아내가 1년 전에 타우에른 산에 올랐으며 타펜카르 산 부근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크레바스 crevasse 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그 두 산이 잘츠부르크 알프스 산맥에 있다는 것은 리마의 경찰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페루경찰이 그를 데려가 조사를 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사내가 입고 있던 바지는 다 해어져 있었고 셔츠는 오스트리아 카른텐 지방의 농군 옷이었다. 이래저래 수상하게 보인 사내는 리마 시내에서 연행되었다. 경찰은 사내가 페루에 온 목적이 정말 무엇인지 캐내고자 했다. 조사해보니 사내는 실제로 오스트리아 카른텐의 페를라흐에서 태어났으며 번창하는 총기 회사를 운영하던 부유한 오스트리아인이었다. 이 외에 신문에 더 자세하게 보도된 것은 없었다.

Thomas Bernhard, The Voice Imitator
Translated by Gene

베른하르트의 짧고 짧은 단편소설이다. 아내를 지구의 반대편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사내의 희망은 얼핏 희극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가슴을 아리게 한다. 사내는 아내를 잃은 슬픔에 실성을 한 것인지 모른다. 또 그렇지 않은지도 어쩌면 단순한 실성이 아닌지도 모른다. 포도주가 물에 포착된 빛이듯이, 슬픔에 포착된 기억이 빚어낸 희망의 신기루가 보이는지도... 신기루... 희망의 신기루인지도...

Sunday, January 25, 2009

심연의 가장자리

심연의 가장자리

나의 존재 안에는 심연 같은 깊은 구멍이 있다—
심연처럼 깊은 구멍이.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나의 필요는 끊임이 없기 때문에
나는 그 구멍을 결코 메꿀 수 없을 것이다. 그 구멍은 메우려 해도 메워지지 않을 것이다.
구멍이 조금씩 차츰차츰 닫혀지도록 좁아지도록
가장자리를 에돌며 손봐야겠다.

그 구멍이 구멍은 너무 크고 고뇌가고뇌는 극심하기 때문에 너무 깊어
항상 그곳으로부터 그곳에서 도망갈 도망칠 유혹을 받을 것이다.
두 가지 극단적인 행동을 피해야겠다.
고통에 잠겨 잠긴 나머지 고통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을 빼앗김을 피해야 하고 피하고
치유하고자 하는 상처를 멀리하고자 하여 멀리하려고
여러 가지로 마음을 흩뜨리는 것을 마음이 흩뜨러짐을 피해야 한다. 피해야겠다.

(헨리 나웬, The Inner Voice of Love: A Journey Through Anguish to Freedom, New York: Image, 1996, p.3)

There is a deep hole in [my] being, like an abyss.
[I] will never succeed in filling that hole,
because [my] needs are inexhaustible.
[I] have to work around it so that gradually the abyss closes.

Since the hole is so enormous and [my] anguish so deep,
[I] will always be tempted to flee from it.
There are two extremes to avoid:
being completely absorbed in [my] pain
and being distracted by so many things
that [I] stay far away from the wound [I] want to heal.

Wednesday, January 21, 2009

피사와 베니스

피사의 시장과 베니스의 시장이 관광객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로 했다. 피사의 사탑과 베니스의 탑을 몰래 하룻밤 사이에 바꿔치기로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비밀스런 계획이 새어나가고 말았다. 그들은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한 그날 밤 정신병원에 감금되었다. 피사의 시장은 당연히 베니스의 정신병원에 감금되었고 베니스의 시장은 피사의 정신병원에 감금되었다. 이탈리아의 관계당국은 이 일을 철저히 비밀리에 처리했다.

Thomas Bernhard, The Voice Imitator
Translated by Gene

Friday, January 16, 2009

날이 저물어

날이 저물어

날이 저물어 어둠이
밤의 날개에서 떨어지니
독수리가 날아오르며 깃털 하나
길털 하나 하늘하늘 떨어지듯 하네

마을의 불빛이
비와 안개 너머 어른거리는데
영혼이 영혼에 잦아드는 비애감 슬픔
물리치지 못하여라

비애와 슬픔과 갈망하는 마음은 갈망은
고통과는 거리가 멀고 가깝지 않고
안개와 안개가 비의 차이만큼 비에 가까운만치
슬픔과 가까운 마음이네

자, 어서 들려주오 어떤 시든 시를
순수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시를 들려주오
불안한 내 마음을 안정시키고
낮에 잦아든 생각들을 몰아낼 수 있는 시를 말이오

아득한 발자국 소리가
시간의 회랑을 거슬러 울리는
아득한 발자국 소리
옛 대가들의 시도 말고
일류 고고한 시인들의 시도 원치 아니함은

군악의 곡조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원대한 사고는
인생의 끊임없는 투쟁과 노고를 생각하게 함이라
오늘밤은 쉬고 싶은 마음 간절하니

그들보다 그들만 못한 보다 겸허한 시인의 시를 들려주오
여름날 소나기구름이 비를 쏟듯
눈꺼풀에서 감은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오듯
시인의 그의 가슴속에서 복받쳐 솟구쳐 나오는 노래를 들려주오

기나긴 노동의 나날과
잠 못 이루는 나날을 지내면서도
경이로운 선율의 음악을
영혼으로 들어낸 들은 시인의 노래를 들려주오

그러한 노래가 가진 힘은
근심의 끊임없는 쉼 없는 근심의 맥박을 가라앉히며
그러한 노래가 가진 힘은 노래는
기도한 뒤에 따르는 축복처럼 임한다네

하면, 그러니 당신이 소중히 하는 시집에서
당신이좋아하는 시를 들려주오
그리고 당신의 아름다운 음성에
그 시인의 운율을 실어주오

그러면 밤은 음악으로 가득할 것이며
하루를 가득 채운 채우는 근심은
아라비아인들처럼 텐트를 걷어
소리 죽여 슬그머니 가버릴 사라질 것이오

헨리 W. 롱펠로우 (1807-1882)
Translated by Gene
Rev. 01-18-09

영어 원본은 여기

Thursday, January 15, 2009

태양


태양 (원본)

당신은
당신의 생애에서
태양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본 적이 있나요

태양이
저녁마다
여유롭고 편안하게
지평선으로

구름 속으로 언덕 속으로
구겨진 바다 속으로 떠가다가
이내 사라지는 태양, 것을.
그리곤 다시 미끄러지듯

아침마다
세상의 저편에서
한 송이 빨강색 꽃처럼
어둠에서 나와, 나와

그러니까, 초여름 아침
제왕처럼 완벽한 거리를 두고
하늘색 물감 위로 흘러 오르는 것보다 -
당신은 무엇이든
그렇게 열정적인 사랑을 느낀 적이 있나요 -
당신이 그렇게 그곳에
빈손으로 서 있을 때
태양이 당신에게 손을 내밀고
당신을 따뜻하게 하듯,
당신을 채워주는 기쁨만치 부푸는 낱말이
이 세상 어느 곳, 어느 언어에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당신도
세상을 등지거나
아니면
지배력이나
재산에 열중하고 있나요?

매리 올리버
Translated by Gene



Wednesday, January 14, 2009

열정이라는 가시

내 가슴에 있던
열정의 가시
어느 날 뽑아내고 나니
이제 가슴이 느껴지지 않더라

안토니오 마차도
Translated by Gene
영역 시는 여기에.

Tuesday, January 13, 2009

기다림의 힘은. . .

William Talbot


아무도 기다리는 사람이 없으면 삶을 지탱해나갈 수 없습니다.
길고 고된 여행길에서 돌아오는 사람은 지금,
기차역 혹은 공항에서
누군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하고 싶어합니다 –
집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그간에 있었던 고통스러웠던 순간들,
흥분되었던 순간들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싶어합니다.

1892년, 살인미수로 수감된 미국의 무정부주의자
알렉산더 버크먼은 밖에서 그를 기다리는 몇몇 친구가 없었다면
14년의 잔혹한 감옥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미쳐버렸을 것입니다.
(Alexander Berkman, Prison Memoirs of an Anarchist, New York, 1970)

1960년, 주유소에서 70달러를 턴 혐의로
‘소울대드’라는 중범 형무소에 수감되어,
1971년 탈옥을 시도하다 살해당한 조지 잭슨의 경우,
만일 그의 부모와 두 형제, 그리고 페이 스텐더라는 친구가
밖에서 그를 기다리며, 그가 쓰는 편지를 받으면서
그의 모든 편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답장을 해주지 않았다면,
그가 남긴 인간적인 내용의 감명적인 자료는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Soledad Brother, The Prison Letters of George Jackson, New York, 1970)

이처럼 사람은 자기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제정신을 잃지 않고 삶을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육체가 건강을 잃었을지라도
인간의 정신은 실로 육체를 다스릴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을 가까이 둔 어머니는
아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을 보기 전까지
죽음과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이며,
전쟁터에 나가 있는 군인은
아내와 자식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앎으로써
정신과 몸이 주저앉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무도 기다리지 않을 때,
삶을 지속하고자 하는 고투에서 살아남을 찬스는 없습니다.

(...)
나는 당신을 놓지 않을 것입니다. 내일도 당신을 기다리며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나를 실망시키지 마세요.

이웃에게 이렇게 말할 때,
내일은 더 이상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이 아닙니다.
기다리겠다고 말한 이웃을 통해서
내일은 실체가 되며,
기다리는 사람을 보고
삶에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

생명을 구하는 관계는 단시간에 형성될 수 없다고 말하며
기다림의 힘을 감소시키지 맙시다.
깊은 아픔에 잠겨 있는 사람에게
한번의 시선과 한번의 악수는
오랜 세월의 우정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영원할 뿐만 아니라,
단 한순간에 생성되기도 합니다.


Henri J.M. Nouwen,
The Wounded Healer (New York: Doubleday, 1990), pp.6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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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란 무엇보다도 사랑과 행복의 공간이며 거꾸로 사랑은 집을 집으로 존재하게 하는 구성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이 없는, 또는 사랑을 잃어버린 집이란 더 이상 집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형도의 짧은 시 <빈집>은 사랑의 상실이 빈집을 ‘생산’하는 역학을 감상적이면서도 비의적인 언어에 담았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갖혔네

기형도 <빈집> 전문


최재봉, "간이역에서 사이버스페이스까지" (이룸, 2003), pp. 47-48.

Saturday, January 10, 2009

그런 때가 내게도 - 워즈워드

송시 (그런 때가 내게도)

풀밭, 아담한 숲, 개울,
그리고 눈에 보이는 평범한 모든 것이
천상으로
의 화려함과 신선함으로 옷 입은 듯한
그런 때가 내게도 있었다네
지금은 옛날처럼 그렇지 않으니
밤낮으로
사방을 둘러보아도
이제는 내가 보았던 모든 것이 더 이상 보이지 않네

는 뜨고 지며
장미는 아름답고
텅 빈 하늘,
기뻐하며 주위를 둘러보네
이 빛나는
호수는 곱고 아름다우며
햇빛은 찬란하게 탄생하지만
어디를 가든 이 땅에서
찬란함이 사라졌음을
나는 안다네

새들은 그다지도 즐거운 노래를 부르고
어린 양들은 작은 북 소리에
장단 맞추듯 뛰는데
나에게만 슬픈 생각이 들었지만 내게만 든 슬픈 생각
때맞춘 한마디가 위안이 되었고 때맞춘 한마디에 위안 받고
나는 다시 강해졌다네
나의 슬픔으로 계절을 부당하게 취급하지 말라고
폭포가 절벽에서 부는 나팔 소리
메아리가 온 산에서 울려오고
바람이 잠의 들판에서 불어오네
그리고 온 세상은 행복하고 경쾌하며
육지와 바다는
즐거움에 흠뻑 젖고
오월의 기분으로
모든 짐승이 휴식을 취하네
기쁨의 자식, 즐거운 목동이여
내 가까이 외치렴, 네 외치는 소리를 듣자꾸나

윌리엄 워즈워드
Translated by Gene

가지 않은 길 -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원본)

노란 숲에 길이 둘로 갈라져 있었다 노란 숲 두 갈래 길
하나뿐인 몸 두 길 모두 갈 수 없어 몸은 하나 길은 둘
아쉬움에 한동안 그곳에 선 채로 긴 시간 아쉬움에 머물며
한쪽 길이 수풀 뒤로 돌아 사라지는 것을 수풀 속 한쪽 길 꺽이는 곳
볼 수 있는 만치 바라다보았다 하염없이 머무는 내 눈길

그리곤 그 옆길을 택했다 그리곤 택한 다른 한 길 (01-16-09 작업 중)
역시 좋아 보였고 풀로 덮여 있어
밟아 다져줄 가치가 더 있었기 때문인데
길을 다져준다고는 했지만
사실은 이미 지나간 발길로 인해서
두 갈래 길 모두 거의 비슷하게 다져져 있었다
비슷하게 다져진 두 갈래 길

그날 아침 두 갈래 길 모두 발길에 더럽히지 않은
발길에 더럽히지 않은 낙엽으로 덮여 있었다
낙엽에 덮힌 두 갈래 길
다른 한 길은 하나는 다음에 가보기로 했지만(!)
길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 알기에
그곳에 다시 돌아올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없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어디에서인가
한숨 지며 이 이야기를 하고 있겠지
어떤 숲에 두 갈래 길이 있었는데, 나는 . . .
나는 발길이 적은 길을 택했노라고
그리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로버트 프로스트 (1874-1963)
Translated by Gene


이 시는 흔히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라고 권장하고 찬양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렇게 읽을 수도 있겠지만, 이 시가 씌인 배경을 보면 무슨 선택이든 스스로 내리는 선택 그 차제가 중요함을 노래하는 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로스트는 친구인 시인 에드워드 토머스 Edward Thomas 를 보고 이 시를 썼다. 친구의 후회하는 습관을 슬쩍 비꼬는 시다. '토머스는 그 누구보다도 내게 주변적인 인물이었다.' 프로스트가 토머스에 대해한 말이다." (Karen McCosker)

자신의 주관적인 선택이 아닌 다른 사람이 내리는 선택을 따라가는 삶, 혹은 두 갈래 길에서 어느 길을 갈지 선택하지 못하는 삶, 혹은 두 길을 다 가려고 하는 나머지 어느 한 길도 제대로 가지 못하는 삶을 생각하게 한다.

*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낭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