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February 26, 2009

미시건 주에 사는 마빈 슈어라는 이름의 93세 노인이 자신의 집에서 동사했다. 일정 사용 수치가 넘으면 자동적으로 전기 공급을 끊는 계기가 그의 집 계량기에 설치된 지 4일 만에 일어난 일이다. 계기 설치는 노인의 전기 요금이 $1,000 가량 연체되었기 때문에 전기회사에서 취한 조치였다. 이 일이 알려지자마자 주정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추운 겨울에 전기나 가스 공급이 끊이지 않도록 하는 긴급 규정을 마련했다. 그런데 이 노인의 유언장 집행으로 어느 병원에서 $60만 달러 정도의 돈을 기부 받게 되었다.

Wednesday, February 25, 2009

우리 옆집에 사는 아일랜드계 미국인 모린 갤러허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모린은 중년의 학교 선생님이다. 어제 모린이 집에 없는 사이에 우리 집에 배달되어 맡겨진 조화를 전해주고 알았다. 모린의 아버지는 모린과 함께 살지 않고 가끔 들렀기 때문에 나는 얼굴만 아는 정도다. 지난 12월, 밖이 시끄러워 내다보았더니 이 할아버지가 딸과 다투었는지 아내와 다투었는지 집밖에 나와서까지 소란을 피우다가 할머니가 운전하는 차를 거칠게 올라타고 가버린 적이 있다. 흔히 하는 말로 ‘정을 때려고’ 그랬을까? 두 달도 채 못 되어 그렇게 가버릴 것을 왜 그렇게 악다구니를 부렸을까. . . 어떤 사정이었을까. . .

Tuesday, February 24, 2009

우리 한국 사람들은 자기 잘못을 인정할 줄을 모른다. 드물게 인정하는 일이 있어도 깨끗하게 알맹이를 드러내지 않고 그럴듯한 포장지로 다시 싼다. 극심한 경쟁 구조에서 피해 의식에 사로잡히고 길들여진 탓일까? 과거 한국의 업체와 관계를 맺고 일하면서 거듭 겪었고 지금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겪는 일이다.

20여년 전, 미국에 오기 전에는 미국 사람들은 겸손할 줄 모른다고 들어 알고 있었다. 삼가는 마음이 없이 자기의 능력을 과시하고 광고하는 사람들이라고. 그러나 이제는 한국인들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최근에 미국에 오는 한국인들을 보면 무례하고 징그러울 정도다. 한국의 겸양지덕도 이젠 정말이지 옛말인 듯하다. 내가 무례하지 않게 겸손한 말을 하면 진짜 그런 줄 알고 오만방자한 꼴을 보이기까지 한다. 진짜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줄 알고 얕잡아보는 것이다. 그래서 공연히 손해보지 않으려고 나도 모르게 나를 내세우게 되는 때도 있다. 고향이 그리워 나가서 좀 살아볼까 하는 상념이 들다가도 이런 꼴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싹 떨어진다.

그리고 우리 한국인들은 지식을 자유로이 공유할 줄을 모른다. 따라서 인터넷 기술은 발달할지 몰라도 내용의 충실과 융성은 보지 못할 것이다. 예가 없이 기만 충만한 사회가 되어 가고 있는 듯하여 답답한 심정이다.

미국의 중국 사람들은 뭉치는 힘이 강하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좀 살만 하면 가급적 서로 멀리 떨어져 살려고 하고 또 한국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들어가 살려고 한다. 같은 한국인들이 무섭고 싫은 까닭이다. 이 무슨 피해 의식인지!

아, 정지용의 시나 읆고 말자.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어디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Ever returning home,
I see it is nowhere to be seen.

Foxes have holes
and birds in the air have nests.

But my mind is a cloud without home
wandering over foreign ports.

But I have a restless heart,
a cloud floating over foreign ports.


-trans. Gene

Saturday, February 21, 2009

마음의 갈망

침묵이 내게 말한다. 말하지 말라고.
그리곤 깊음으로, 어둠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나는 가지 않으려고 버틴다.
침묵이 내게 말한다. 가지 않을 수 없다고.
내 마음이 갈망하는 것을 찾으려면 가지 않을 수 없다고.
(. . .)

- Gene

Friday, February 6, 2009

자유인에게 찬미하는 법을

땅은 명예로운 손님을 영접할지니 영접하라
윌리엄 예이츠가 영면하노니
아일랜드의 시의 그릇이 그릇
비워진 채로 내버려두라

어둠의 악몽에서
유럽의 모든 개들이 개들이 모두 짖어대며
살아 있는 국가들은 저마다
미움 속에 격리되어 기다린다

지성의 불명예는
모든 인간의 얼굴에서 응시하며
연민의 바다는
모든 눈동자에 가두어져 얼어 있다.

모든 인간의 얼굴이 응시하는
지성의 불명예
모든 눈동자에 갖혀 얼어 있는
연민의 바다


시인은 밤의 바닥으로
곧장 따라갈지니 따라 내려갈지니
그래도 속박을 푸는 음성으로
우리를 설득하여 기뻐하게 하라

시 한 수 농사지어
저주의 포도원을 만들고
고초의 열광 중에
인간의 실패를 노래하라

마음의 사막에서
치유의 샘이 시작하게 하며
그의 자유인이 인생의 감옥에서
자유인에게 찬미하는 법을 가르치라.

- W. H. 오든
trans. Gene

Thursday, February 5, 2009

숲은 아름답고 깊지만. . .

마음속을 살펴본다.
살펴봐도 믿음은 없다.
마음속 겹겹이 주름진 곳
그분이 가려져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상에 두루 알려져 있지 않음을 본다.
의무의 견고한 틀이
뿌옇게 피어오르는 증기처럼 허물어진다.
아무런 소용없는 일이다.
이리저리 내동댕이쳐지는 나 자신.
머물러야 한다. 순종만 있을 뿐이다.
서둘러 일어나 그분이 명하신 일을 행한다. (1)

믿음이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순종은 우뚝 선다. 포도주를 예찬하며 “포도주는 물로 포착된 빛이다.”라고 갈릴레오는 말했다. (Wine is light, held together by water.) 이 표현을 빌려서 순종은 의지에 포착된 빛이라고 부르고 싶다. 의혹의 토네이도에 휘말려도 순종을 상기하며 자신을 채찍질하는 맥도널드에게 그 표현은 매우 적절한 것 같다. 사방에 보이는 것이 없어도 순종으로 자신을 다잡아 나가는 모습은 나에게 너무 커 보인다.

눈 오는 저녁 숲가에 서서

이 숲이 누구네 숲인지 알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집이 마을에 있으니
숲이 눈으로 채워지는 것을
내가 여기 멈춰서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리.

연중 가장 어둠이 깊은 저녁,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
농가도 없는 곳에 멈춰 서며
이상한 생각이 드는지

뭐가 잘못 되기라도 했는지 물어보듯
내 작은 말이 흔드는 마구의 방울소리 말고
다른 소리는 실바람과 보송보송 눈송이의
스쳐 지나가는 소리 밖에 없다.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지만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그리고 잠자기 전 먼 길을 가야 한다,
그리고 잠자기 전 먼 길을 가야 한다. (2)

눈이 오면 생각나는 이 익숙한 프로스트의 시가 지니고 있는 음악적 아름다움이 한글로 번역되며 손실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20여년의 이국 생활 탓이라고 스스로 변명하지만 부족한 한글 표현력 탓에 졸역이 되어버려서 그런지도 모르지. 어쨌든 원문을 잔잔히 소리 내어 읽을 때, 비로소 이 시의 서정적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외부적인 조건 가운데 잊거나 포기하기 쉬운 것을 기억해내고 스스로를 재촉하는 모습은 두 시인의 공통점인 듯하다. 어둑해져가는 시간, 호수와 숲 사이를 지나며 눈으로 하얗게 지워져가는 숲을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에 안주하는 가운데, 문득 할 일을 생각해내며 다시 길을 재촉하는 시인. 시인의 약속이 어떤 약속이든 나도 그와의 약속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몇 년 전에 하고 잊혀진 약속. 기억하고 있어도 현실에 안주하며 애써 기억하지 않으려는 약속. 그러나 여전히 변명이란 작은 악마가 자꾸 나를 끌어내려 앉힌다.


(1)
I search my heart --- I search, and find no faith.
Hidden he may be in its many folds ---
I see him not revealed in all the world
Duty's firm shape thins to a misty wraith.
No good seems likely. To and fro I am hurled.
I have to stay. Only obedience holds ---
I haste, I rise, I do the thing he saith.

- George MacDonald (1824-1905), Diary of an Old Soul.

(2)
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

Whose woods these are I think I know.
His house is in the village, though;
He will not see me stopping here
To watch his woods fill up with snow.

My little horse must think it queer
To stop without a farmhouse near
Between the woods and frozen lake
The darkest evening of the year.

He gives his harness bells a shake
To ask if there is some mistake.
The only other sound's the sweep
Of easy wind and downy flake.

The woods are lovely, dark, and deep,
But I have promises to k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 Robert Frost (1874-1963)

Tuesday, February 3, 2009

1974년 7월12일, 금요일

바깥 세상에서 누군가 나를 생각하고 있겠지 하며
기대감을 가지고 편지통으로 향하는 한,
친구들이 나를 생각하는지
나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한 마음이 드는 한,
이 수도원에서 다른 수사들에 비해
뭔가 특별히 뛰어난 사람이고자 하는
남모르는 욕구가 마음속에 있는 한,
피정객들이 내 이름을 언급하는 환상을 품는 한,
수도원장이나 수사들 중 누구에게서든지
각별한 관심을 기대하는 한,
보다 재미있는 일을 하길 원하거나
좀더 자극적인 일이 있기를 원하는 한,
내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위한 작은 공간은 커녕
아예 작은 공간이 생길 미동조차도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


1974년 7월13일, 토요일

(…)
우리가 남다르려는 욕구를 버리고,
우리 자신은 특별한 배려를 받을
아무런 권리가 없는 죄인임을
체험적으로 알았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 각자의 이름을 부르시며
우리를 친밀한 관계의 자리로 초대하시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Henri J.M. Nouwen, The Genesee Diary (New York: Doubleday, 1976), pp.64-67.
trans. Ge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