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uly 23, 2009



As soon as the writer "learns to write," as soon as he knows what he is going to find, and discovers a way to say what he knew all along, or worse still, a way to say nothing, he is finished.

- Flannery O'Connor, Mystery and Manners (FSG, 1970), p. 83.

Sunday, July 19, 2009


당신의 편지를 받을 때 제일 처음 느끼는 것은 당신의 체온이에요. 당신이 노래할 때 그 목소리에 담긴 것과 같은 따뜻함이에요. 얼른 당신의 편지를 바싹 끌어안고 싶지만 그러지 않아요. 잠시 기다리면 그 온기가 퍼져 나를 온통 감싸기 때문이에요. 당신의 편지를 읽고 또 읽었을 때, 당신의 온기에 휩싸여 있을 때, 편지에 적힌 단어들은 먼 과거에 속하고 우리는 그 단어들을 함께 바라보고 있어요. 우리는 미래에 있어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래가 아니에요. 우리는 이미 시작한 미래에 있어요. 우리의 이름이 있는 미래에 있어요. 내 손을 잡아요. 당신 손목에 있는 상처에 키스를 해줄게요.

당신의,
아이다

John Berger, From A to X (Verso, 2008), pp. 32-33

Monday, June 22, 2009

사랑은 시간의 노리개가 아니다. . .
사랑은 시간의 낫과 창에 굴복하지 않고
세상의 종말 끝까지라도 감내하고 이겨낸다.

이것이 틀린 말이라면, 그리고 내 잘못임이 입증된다면
나는 이것을 쓰지 않았으며 사랑을 해본 사람은 아무도 없노라.

Love is not Time's fool. . .
Love alters not with his brief hours and weeks
But bears it out even to the edge of doom.

If this be error, and upon me prov'd
I never writ, not no man ever lov'd.

William Shakespeare, Sonnet 116, quoted in John Berger, From A to X (Versos, 2008)
Trans. Gene

어린 시절로부터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들이
보듯 보지 않았고 공동 우물에서
나의 열정들을 길 수 없었다
나의 슬픔, 나는 내 가슴을 여느 같은
가락에 맞춰 춤추게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한 모두, 나는 혼자 사랑했다
어린시절 나는 폭풍우 같은 인생의 새벽에
아직도 나를 속박하는 신비를 길었다
선과 악의 온갖 깊이로부터 길었고
급류로부터, 샘물로부터
산 속의 붉은 절벽으로부터
가을의 금빛으로
내 주변을 운행한 태양으로부터
내 곁을 내리치며 지나간
하늘의 번개로부터
천둥과 비바람으로부터
내 눈에 악마의 형체로 보인
(나머지 ‘하늘’은 파랬지만)
구름으로부터 나는 그 신비를 길었다

Edgar Allan Poe, Alone
Trans. Gene

Friday, June 19, 2009



돈 키호테

영원한 젊음의 기사
오십 세의 그는 가슴속에서 머리를 찾고 나서
어느 칠월 아침
올바른 자, 미인, 정의로운 자를
손에 넣기 위해 길을 떠났다

어리석고 거만한 거인들에 맞서는 기사
슬프지만 용감한 로시난테의 등에 앉은 기사
나는 무언가를 갈망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만
당신의 가슴이 한 근에 한 근 더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면
무의미한 이 풍차들과 싸우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오

하지만 둘시네아가 당신의 여자라는 것은 물론 맞는 말이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당신은 이 사실을
거리 장사꾼들의 면전에 크게 외칠겠지만
그들은 당신을 말에서 끌어내려
흠씬 두들겨줄 것이오
하지만 당신은, 우리에게 내린 저주에 대항하는 불패의 기사인 당신은
무거운 철제 투구 덮개 뒤에서 계속 빛을 발할 것이며
둘시네아는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오


Nazim Hikmet, Don Quixote
Trans. Gene

Wednesday, June 17, 2009

내게는 은銀 안장을 얹은 말이 없다
기대어 살 유산도 없으며
모은 재산도 없고 부동산도 없다
꿀 한 단지가 내가 가진 전부다
불꽃처럼 붉은
꿀 한 단지!

나의 꿀은 -
재산과 부동산은 -
다시 말해 내 꿀 단지는
각종 해충으로부터
내가 지키는 모두이다
형제여, 두고 보라...
내 꿀단지에 꿀이 있는 한
꿀벌이 팀부쿠로부터
날아들 터이니

Nazim Hikmet, My Poetry
Trans. Gene

Monday, June 15, 2009

1962년 3월28일
나는 프라하-베를린 운행 기차의 창가에 앉아 있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다
연기 자욱한 젖은 평야의 지친 새처럼
밤이 내려앉고 있다
밤이 깔림을 지친 새와
비교하는 게 싫다

나는 내가 이 땅을 사랑하는지 알지 못했다
땅을 일구어보지 않은 자가 땅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땅을 일구어본 적이 없으니
필시 그저 플라톤적인 사랑이리라

나는 지금까지 늘 이 땅의 강들을 사랑했다
정상에 성이 있는 언덕들
언덕들을 두르며 구부러지는 이 강처럼 움직임이 없거나
시야에서 사라지는 멀리 평평하게 뻗어나가든
나는 이 땅의 강들을 사랑했다
나는 같은 강에 몸을 두 번 담글 수 없음을 안다
강은 보이지는 않는 새로운 빛을 실어 나름을 나는 안다
사람의 수명은 말보다는 조금 더 길지만
까마귀보다는 훨씬 짧음을 나는 안다
사람들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 문제로 부심했고
내가 가고 난 뒤에도 그럴 것임을 나는 안다
내가 하는 이 모든 말이 예로부터 수없이 많이 회자되었고
내가 가고 난 뒤에도 계속 그럴 것임을 나는 안다

나는 내가 하늘을 사랑하는지 알지 못했다
흐린 하늘 맑은 하늘
안드레이가 보로디노에 누워 관찰한 푸른 하늘
나는 감옥에서 『전쟁과 평화』 전편을 터키어로 번역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푸른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마당에서 들리는 소리다
간수들이 또 누군가를 구타하고 있다
나는 내가 나무를 사랑하는지 알지 못했다
모스크바 근방 페레델키노의 헐벗은 너도밤나무들
겨울날 나무들이 고결하고 수수하게 내게 엄습한다
포플러가 터키의 나무인 것처럼 너도밤나무는 러시아의 나무다
“이스미르의 포플러
잎들이 떨어지고 있다. . .
사람들이 나를 부르기를 칼이라고. . .
젊은 나무 같은 연인이라고 한다. . .
나는 장중한 장원 저택들을 하늘 높이 날려보낸다”
나는 1920년 일가즈 숲 어느 소나무 가지에 행운을 빌며
수놓은 리넨 손수건을 걸어 묶었다

나는 내가 길을 사랑하는지
심지어는 아스팔트 포장도로마저 사랑하는지 알지 못했다
모스크바에서 크리미아 코크테벨레로 가는 길
베라가 운전을 하고 있다
밀폐된 상자 안의 우리 둘
양쪽으로 멀리 그리고 말이 없이 세상이 흘러 간다
나는 내 인생에서 누군가와 그렇게 가까웠던 적이 없다
내 나이 열여덟이었을 때 산적들이 볼루와 게레데 사이의
붉은 도로에서 나를 가로막았다
마차에서 그들이 가져갈 수 있는 것이라고는 내 생명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열여덟 살 나이에는 자신의 생명이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라마단 밤 그림자놀이에 가기 위해
어두운 진흙탕 거리를 종이등불로 밝히며 힘들게 걸어가며
과거에 어디선가 쓴 말이다
어쩌면 이것은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닐지 모른다
어쩌면 어디선가 책에서 읽은 얘기인지 모른다
여덟 살 소년이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이스탄불의 라마단 밤에 그림자놀이를 보러가는 이야기
붉은 터키모를 쓰고 검은담비 모피 외투를 입은 할아버지
그리고 하인의 손에는 등불이 들려 있고
나는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웬일인지 꽃 생각이 난다
양귀비 선인장 노란수선화
카디코브 이스탄불의 노란수선화 밭에서
나는 마리카에게 키스를 했다
신선한 아몬드 향내 같았던 그녀의 숨결
나는 열여덟 살이었고
내 가슴은 그네를 뛰며 하늘에 닿았다
나는 내가 꽃들을 사랑하는지 알지 못했다
친구들이 감옥에 있는 내게 카네이션 세 송이를 보내주었다

방금 별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바닥에 쓰러져 밑에서 쳐다보든
별들의 곁을 날아가든
나는 별도 사랑한다

우주비행사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다
별들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큰지
검은 융단에 놓인 큰 보석처럼 보이는지
오렌지색 가운데 살구처럼 보이는지
별들에게 가까이 갔을 때 마음이 뿌듯했는지
잡지책에서 우주의 컬러 사진을 보았다 자 동지들이여
동요하지 마시오 어떤 별들은 非具象적인 혹은 추상적인
그림들과 같았는데 다시 말해 지극히 조형적이고 실재적이었소
별들을 바라보는 내 가슴은 입까지 나와 있었다
별들은 사물을 이해하려는 끊임없는 우리의 욕망이다
별들을 바라보며 나는 죽음을 생각하되 전혀 슬픈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내가 우주를 사랑하는지 알지 못했다

내 눈 앞에 눈이 반짝인다
펑펑 줄기차게 내리는 젖은 눈과 소용돌이치는 마른 눈
나는 내가 눈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내가 해를 사랑하는지 알지 못했다
지금 체리처럼 빨갛게 해가 질 때조차도 그랬다
이스탄불에도 때론 그림엽서 같이 해가 지지만
그렇게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조프 바다를 제외하고는 내가 바다를 사랑하는지
혹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내가 구름을 사랑하는지 알지 못했다
내가 구름 밑에 있든 구름 위에 있든
구름이 거인처럼 보이든 거친 털의 흰 짐승 같든
나는 내가 구름을 사랑하는지 알지 못했다

가장 가장되고 가장 무기력하고 가장 프티 부르주아적인
달빛이 갑자기 나를 비춘다
나는 달빛이 좋다

나는 내가 비를 사랑하는지 알지 못했다
미세한 그물처럼 내리든 유리창에 철벅거리든 내
가슴은 그물에 엉키거나 한 방울 비에 갇혀 미지의 나라들을
향한다 나는 내가 비를 사랑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프라하-베를린 기차의 창가에 앉아
느닷없이 이런 격정들을 발견한 것은 어인 일인가
여섯 번째 담배를 피워 물었기 때문일까
담배 하나로도 나는 죽을 수 있다
모스크바에 두고온 누군가를 생각하며 반은 죽어 있기 때문일까
그녀의 밀짚금발 머리 푸른 속눈썹

기차가 칠흑 같은 밤을 관통하며 돌진한다
나는 내가 칠흑 같은 밤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했다
엔진에서 불꽃이 튀어 날아간다
나는 내가 불꽃을 사랑하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내가 그렇게 많은 것들을 사랑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60세가 되어서야 이 사실을 발견했다 프라하-베를린 기차의
창가에 앉아 돌아오지 못할 여행을 떠나는 듯
세상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Nazim Hikmet, Things I Did Not Know I Loved
Trans. Gene

Sunday, June 14, 2009

I

산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정말 진지하게 살아야 한다
즉 다람쥐의 삶
삶을 초월한 저 너머의 무엇을 찾지 않는 삶
산다는 것 자체가 모든 활동의 전부인 삶을 살아야 한다

산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 아니다
삶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어느 정도까지 그래야 하냐면, 가령
등 뒤로 양손이 묶여 벽에 기대 세워지거나 혹은
흰 가운과 안전 안경을 끼고 실험실에 있더라도
또 산다는 것은 정말 실감나고
가장 아름다운 것임을 아는 순간에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죽되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죽을 수 있는
정도까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즉 70세가 되어서도 올리브 나무를 심되
자신의 자손을 위해서가 아니라
죽음이 두렵더라도 그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즉 산다는 것이 더 중하기 때문에
올리브 나무를 심을 수 있도록
삶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II

중병을 앓아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할 때
흰 수술대에서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지 모른다 해도
너무 일찍 가게 되어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하여도
그래도 귀에 들리는 우스갯소리에 웃을 것이며
비가 내리는지 창밖을 내다볼 것이며 혹은
마음 졸이며 뉴스 시간을 기다릴 것이다

전선에 나아가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을 위해 총을 든다고 할 때
그곳 첫 공격이 있는 바로 그날 쓰러져
얼굴을 땅에 대고 죽을지 모르지만
야릇한 분노를 느끼며 이 사실을 알겠지만
몇 년이고 계속될지 모를 전쟁의 결과를
죽도록 걱정할 것이다
수감되어 50이 다 되었다고 할 때
18년을 더 기다려야 철문이 열린다고 해도
그래도 우리는 바깥세상과
사람들과 동물들과 더불어 살 것이며
땀 흘리며 굽이칠 것이다
즉 어디에서 어떻게 살든
우리는 절대로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야 한다


III

이 땅은 싸늘하게 식을 것이다
별들 가운데 있는 하나의 별
가장 작은 별 중 하나인 이 땅
파란 벨벳의 빛나는 띠끌
이 지구, 멋진 땅
이 땅은 언젠가 싸늘하게 식되
얼음조각처럼 혹은
죽은 구름같이도 식지 아니 하고
속이 빈 호두처럼
칠흑의 우주 공간을 굴러갈 것이다
이것을 슬퍼해야 할 때는 지금이며
바로 지금 이 슬픔을 느껴야 함은
세상을 그만치 사랑해야 함이며
그래야만 “내가 여기 살았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Nazim Hikmet, On Living
Trans. Gene

협심증

의사 선생, 내 심장의 반쪽이 여기 있다면
다른 반쪽은 황허 강을 향해 쇄도하는
군대와 함께 있다오
그리고 말이오, 의사 선생
매일 아침 해가 뜰 때 내 가슴은
그리스에서 총살당하고
매일 밤은 말이오, 의사 선생
죄수들이 잠들고 진료소가 비었을 때
내 가슴은 이스탄불의
어느 너덜너덜한 오래된 집에서 멈추었소
그런데 십 년이 지나
내가 불쌍한 동포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말이오
의사 선생, 빨간 사과 하나밖에 없다오
내 가슴 말이오
의사 선생, 그게 바로
이 협심증의 원인이오 -
니코틴, 감옥, 동맥경화 때문이 아니오
창살 틈으로 밤을 쳐다보면
가슴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내 가슴은 여전히 아주 먼 별들과 함께 뛰고 있다오

Nazim Hikmet, Angina Pectoris
Trans. Gene


Saturday, June 13, 2009



ㅈ ㅎ ㅍ ㄱ
숨막히는 외로움 (1)

외로움이라는 고통스러운 경험에 돌입하는 것은 절대로 쉬운 게 아니다. 우리는 외로움이라면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그것은 인생의 어느 순간, 누구에게든 닥치는 경험이다. 어렸을 때 눈이 사시라고 같은 반 친구들의 놀림을 받았을 때 느꼈을 수도 있고, 고등학교 시절에 들고 싶은 운동부에 들지 못해 그랬을 수도 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모두가 학점 얘기나 하고 좋은 친구는 찾기 힘들었던 경험이 있을 수 있다. 혹은 어떤 운동단체에 가담했을 때 아무도 자신의 제안에 귀기울이 않았던 경험이 있을 수도 있다. 선생이라면 자신이 공들여 준비한 강의에 학생들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게 느껴지는 경험이 있을지 모른다. 목사나 신부라면 좋은 뜻으로 행하는 자신의 설교를 들으며 조는 사람들을 보고 외로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직장생활에서 일상적으로 갖는 회의에서, 학회에서, 상담시간에, 기나긴 사무실 근무시간에, 단조로운 노동을 하며, 혹은 혼자 책을 읽을 때 지속적으로 집중해서 읽을 수 없는 책에서 눈을 떼고 다른 데를 쳐다보며 그런 느낌을 가질지 모른다. 사실상 인간이라면 거의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와 유사한 - 혹은 그보다는 더욱 극적인 - 상황에 놓이게 마련이다. 이 때, 내면에 그 이상한 좀먹는 듯한 느낌, 그 정신적인 공허감, 그 마음을 어지럽히는 불안감을 느끼며 “외롭다”는 생각을 한다.

. . .

우리가 처해진 현대사회는 외로움을 더욱 예리하게 느끼게 한다. 우리는 가장 친밀한 관계마저도 경쟁과 겨룸의 부분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살고 있다.

- Henri J.M. Nouwen, Reaching Out (Doubleday, 1986), pp. 23-24.
Trans. Gene

Friday, June 12, 2009

Tuesday, June 9, 2009

우리는 모두 어떤 단체, 인종, 부족, 가족, 공동체, 혹은 종교의 일원이다. 자유는 우리가 속해 있는 그 어느 것도 완전하지 않으며 저마다 한계와 결점이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인간의 공동체라면 모두 제각기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다. 우리는 모두 우리들보다 큰 무엇의 부분이다. 우리는 모두 어떤 불가해한 근원에서 흘러나와, 진리와 사랑의 빛을 지니고 그곳을 향해 여행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 우주의 근원, 우주의 심장과 교감을 이루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

- Jean Vanier, Becoming Human (Paulist Press, 1998), p. 118.
Trans. Gene



자유의 결핍은 두려움, 즉 현실과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에 못지않다. 자유의 결핍은 망상과 편견을 고수함, 그리고 심지어는 거짓말에 집착함을 의미한다. 자유의 결핍은 강박충동을 다스리기보다 강박충동의 노예가 됨을 의미한다. 자유의 결핍은 현실에 대한 새로운 미래도를 형성하기보다 현실에 미래도를 강요하거나 무력으로 현실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자유의 결핍은 오직 나만이 진리를 알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은 모두 틀리고 어리석다고 생각함을 의미한다. 그것은 편견의 통제 하에 놓임을 의미한다.

- Jean Vanier, Becoming Human (Paulist Press, 1998), p. 116.
Trans. Gene

Monday, June 8, 2009

Sunday, June 7, 2009


바다는 진주가 있고
하늘은 별이 있지만
내 가슴은 내 가슴은
사랑이 있어요

바다는 크고 하늘도 그렇지만
내 가슴은 더 크고
진주나 별보다 더 아름다우며
내 사랑의 빛을 번쩍이며 비추어요

그대 젊은 여인이여
내 큰 가슴에 들어오세요
내 가슴과 바다와 하늘이
사랑으로 녹아 사라지고 있어요

Heinrich Heine, The Sea Hath its Pearls
Trans. Gene from English Translation by Henry Wadsworth Longfellow






아름다운 꽃 한 송이로 보아도
당신은 너무 곱고 너무 순수해요
넋을 잃고 당신을 쳐다보는데 슬픔이
내 가슴에 슬며시 잦아들어요

머리카락이 부드러운 당신의 머리
기꺼이 두 손을 포개어 감싸고
당신을 아름답고 순수하고 곱게
지켜달라고 하나님께 기도 했어요

Heinrich Heine, The Old Dream Comes Again To Me
Trans. Gene from English Translation by Kate Freiligrath Kroeker

Saturday, June 6, 2009



ㅎ ㅈ ㅅ ㄹ
하이데거 사상의 반영물으로서의 오두막 (3)



하이데거의 오두막과 집은 각각 철학자인 그의 삶을 비추는 거울로 볼 수 있다. 이 거울들은 각각 다른 마음가짐을 반영한다. 오두막이 나타내는 자세는 ‘거주’와 ‘공간’에 관한 하이데거의 글에 보이는 마음가짐과 - 작은 생활공간들과 이 공간들이 뒷받침하는 활동들이 서로 깊이 얽혀 있는 삶과 행동과 - 나란히 놓일 수 있다. 이와 같이 해석하면, 오두막은 거주하는 관찰자의 철학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견주어 볼 때, 하이데거의 교외의 집이 시사하는 성향은 그의 글과 좀 서로 맞지 않는 것으로 느껴진다. 집은 ‘현상학적’이라기보다는 심미적이며, 情緖와 경험보다는 가구와 단면적 조망과 같은 시각적인 요소들에 더욱 집중하는 것이다. 집의 성향은 교외 주택의 짐짓 꾸미는 태도에 기인하고 사회와 가정의 인습적인 예법에 깊이 얽혀 있으며, 과학기술이 주는 안락과 이것이 세상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에 끼치는 영향에 더욱 합세한다. 이 해석의 두 마음가짐 중, 집에 의해 나타나는 것은 교외 거주 가장과 그의 가족의 배경으로 인식될 수 있는데, 공손하며 다소 꾸밈이 있는 태도와 어느 정도의 오만을 인정한다. 이 마음의 상태는 오두막이 시사하는 대안을 분명히 두드러지게 한다. 오두막은 정서 및 경험과 더욱 조화를 이루며 선택적으로 고독하다고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 Adam Sharr, Heidegger's Hut (MIT Press, 2006), p. 104.
Trans. Gene

내게 다시 찾아오는 옛 꿈 -
보리수 아래 앉아, 우리 둘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어요
머리 위에 반짝이는 5월의 별

우리는 거듭 결혼을 약속하고
얘기하고 웃고 키스했어요
나의 맹세를 잊지 말라고
당신은 내 손목을 깨물었지요

오, 내 사랑, 잔잔한 두 눈,
이는 또한 어찌나 희었는지!
우리의 맹세는 그 경치에 적절했지만
깨문 것은 좀 넘쳤어요

Heinrich Heine, The Old Dream Comes Again To Me
English Translation by James Thomson
Trans. Gene

Friday, June 5, 2009








내가 눈을 뜨고
비가 내리는 위를 쳐다보자
비가 내 머릿속으로 떨어져
두뇌 속으로 흘러들었어요
침대에 눕자 들리는 것은 투두둑
머릿속에 비가 튀는 소리뿐이에요

나는 아주 살며시 발을 내딛고
아주 천천히 걷지만
물구나무서기는 할 수 없어요
내가 넘쳐흐를지 몰라서요
그러니까 내가 방금 말한 말도 안 되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관대히 봐주세요
비가 내 머리에 들은 뒤로는
나는 그 전의 내가 아니거든요

-Shel Silverstein, Rain.
Trans. Gene

Thursday, June 4, 2009

하이데거 사상의 반영물으로서의 오두막 (2)


그런 오두막과 오두막의 환경에 연동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하이데거는 교외에 위치한 그의 집과 이에 수반되는 것들에 대해서는 공명共鳴을 느끼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그 집을 좀더 단단한 고치로 이해한 듯하다. 그 집은 세상과의 더욱 직접적인 연동에서 말미암은 비난들로부터 - 집중적인 수위가 하늘을 찌를 듯했던 비난들로부터 - 하이데거를 차단해주는 친절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주의를 분산시키는 절연체에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오두막의 물리적인 크기가 사람의 거주와 주거지의 사이의 상호 작용을 필연적으로 강화한 반면, 집의 길들여진 편리는 경험적인 공명을 희생한 대가로 얻어지는 듯했다. 그리고 오두막의 부대시설의 결여는 기본적인 필요를 얻는 데 더욱 능동적인 참여를 필요로 했다. 더욱 편리하고 안락하며, 더욱 공개적이며 일반 인간사에 인접한 집은 그에게 있어서 오두막처럼 첨예한 수단이 될 수 없었다. 집은 기본적이지 않았으며, 존재의 문제를 강조하기보다는 오히려 흐리게 했다.




- Adam Sharr, Heidegger's Hut (MIT Press, 2006), p. 103.
Trans. Gene

하이데거 사상의 반영물으로서의 오두막 (1)

오두막살이에 대한 하이데거의 담론은 그를 존재와의 치열한 접촉에 위치했다. 그는 건물과 건물의 주변 환경을 실재에 관한 활발한 물음의 참가자로 보았다. 그에게 있어서 건축물은 직관의 깜박임을 추적하며 거주자와 환경을 예리한 틀로 나타낸다.


오두막과 설비, 그리고 작은 생활공간들은 인간의 점거의 강력한 가능성을 허용하는 빈 그릇들이 되었다. 그는 기본적인 것들만 있는 편함으로 인해 기후와 숲속 동식물과 이례적으로 힘든 접촉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기후와 숲속 동식물의 움직임에 대한 인식을 통해 존재를 구분하고자 했다. 하이데거는 철학적인 권위가 자신이 그러한 것들[자연기후, 숲속 동식물]과 현상에서 찾은 이치 덕분이라고 했다. 그에게 있어서 오두막이 위치한 토트나우베르크에서 세상은 운둔의 순간순간들로 측정되었다. 좀더 깊이 들어가 보면, 그는 거의 수도원적인 自存의 일상을 통해 오두막과 그것이 위치한 산에 감응했다. 그는 그곳에서 존재의 典禮에 대한 그의 믿음을 긍정하고 인생을 일상 속에서의 이행으로 기술했다.

- Adam Sharr, Heidegger's Hut (MIT Press, 2006), p. 103.
Trans. Gene


Wednesday, June 3, 2009





안쪽으로 문이 열리고 잠기지 않은 방 안에서 문을 밀지 않고 당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그 방에 감금되어 나가지 못할 것이다.

- Ludwig Wittgenstein
Trans. Gene


Tuesday, June 2, 2009




Strange things are happening everyday.
I hear the music up above my head,
though the sight of my heart has left me again.
I hear music up above. . .

Secrets are written in the sky. . .

Echos of light that shines like stars. . .






Monday, June 1, 2009



조이는 죽었다. [. . .] 그녀의 사진 중에 쓸만한 사진이 없다. 그녀의 얼굴을 머릿속에 뚜렷이 떠올릴 수조차 없다. 그런데 밤에 눈을 감는데 뜻밖에도 오늘 아침 거리에서 많은 사람들 가운데 본 어느 낯선 사람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에 대한 설명은 물론 간단할 것이다. 우리가 가장 가까이 잘 아는 사람들의 얼굴은 수많은 각도에서, 수없이 다양한 조명 속에서, 수많은 표정을 - 잠자는 모습, 깨어 있는 모습, 웃고 우는 모습, 먹고 얘기하고 생각하는 모습 - 보아 알기 때문에 그 모든 인상들이 우리의 기억에 한꺼번에 밀어닥치며 서로 소멸되어 어떤 흐릿함으로 합쳐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아직도 생생하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그녀의 목소리는 툭하면 나를 어린애처럼 훌쩍이게 한다.




- C. S. Lewis, A Grief Observed (Harper Collins, 2001), pp. 15-16.
Trans. Gene

(데이너 토머스의 "딜럭스" 서문 2/2)

복장은 개성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인 지위와 자긍심을 반영한다. 명품 치장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가르며 언제나 피라미드의 상부에 위치해왔다. 실크, 금과 은, 보석과 준보석, 모피 등 명품의 특징적인 요소들은 인류가 수천 년에 걸쳐 문화적으로 승인하고 추구해 온 것들이다. 선사시대의 인류는 뼈나 깃털 같은 것들로 모피를 장식함으로써 자신을 돋보이게 했다. 페르시아인과 이집트인은 기원전 2세기 전부터, 중국인은 1만 2000년이나 오래된 옛날부터 실크 자수로 외관을 꾸몄다.

호사품의 과시는 힘과 업적을 의미했으며 조롱과 부럼의 대상이 되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제이 폴 게티 박물관(J. Paul Getty Museum)의 고대유물 담당 큐레이터인 케네스 라파틴에 의하면, 호사품이 낭비냐 아니냐 하는 논의는 기원전 700년 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에트루리아인들은 몸에 금을 둘렀으며 발트해 연안 제국으로부터 앰버를 수입했고, 벽옥이나 홍옥수와 같이 조각된 아름다운 보석을 지니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시대의 사회 보수주의자들에 의하면 바로 이 같은 호사품에 대한 기호가 그들을 몰락으로 이끌었다고 한다.

라파틴의 설명에 의하면 그리스의 귀족들은 “겉모양으로 시선을 끌기를 좋아해서 금과 화려한 옷을 착용하고 다녔으며 일반 대중들이 이것을 모방하곤 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부자들은 일반 서민들과 구별되고 그저 더 돋보이기 위해서라도 더욱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게 되었다. 통치자들은 사치 금지법, 즉 의복과 귀금속 및 기타 사치품과 관련해서 부의 과시 정도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하여 평민들이 귀족들을 모방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과시적 소비를 억제하려 했다. “어떤 지역에서는 신전에 귀금속을 지니고 가면 그것을 제물로 바치고 나와야 했으며, 지니고 있던 사치품을 신들에게 헌납하면서 종종 자신의 이름을 쓰거나 꼬리표를 달아, 누가 바친 것인지 알도록 표시를 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이 신전에서 그 물건을 보면 봉헌자의 훌륭한 미적 감각과 대범함에 찬탄을 보내곤 했다.” 사치품인 것처럼 속이는 것은 최악의 불명예로 간주되었다. 그리스의 조각가 피디아스가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에 값싼 재료인 금도금 대리석으로 아테네 여신상을 조각하겠다고 했지만 아테네 의회에서 이 제안을 거부했다는 고대의 전설이 있다. “창피한 줄 알라”고 의원들은 소리를 질렀고 금과 상아를 재료로 써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과시하고 싶은 마음만 있었지 돈을 아끼려는 생각은 없었다”고 라파틴은 말한다.

오늘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대로의 호사품, 즉 명품의 유래는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와 보나파르트 가문의 통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루이 비통, 에르메스, 카티에 등 우리가 애용하는 여러 명품 브랜드는 18세기나 19세기에 이름 없는 장인들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이들은 왕실용으로 상상할 수 있는 최상의 아름다운 물건들을 만들었다. 19세기 후반, 군주제의 붕괴와 산업을 통한 부의 증가를 통해 명품은 본래 예로부터 대대로 돈이 있는 유럽의 귀족이나 미국의 밴더빌트가, 애스터가, 위트니가 등 배타적인 상류사회의 영역이 되었다. 신분에 어울리는 사교클럽에 들어가는 것처럼, 또는 그 가문의 이름을 이어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명품은 상류사회의 자연스러운 일부분, 즉 늘 그래왔고 또 예정되어 있는 일부분이었다. 그리고 명품은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극히 제한된 상류 고객들을 대상으로 소량 생산되었으며 주문 생산도 흔히 있는 일이었다. “내가 젊었을 때는 보그(Vogue)지에 난 종류의 옷을 입은 사람치고 부엌에 뭐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보그의 편집장이었던 다이애너 브릴런드(Diana Vreeland)가 자신의 자서전 “D.V.”에서 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 패션의 아버지라고 여기는 크리스티앙 디오르(Christian Dior)는 1957년 타임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현대사회에서의 명품의 중요성에 대해 음미하며 이렇게 말했다: “난 철학자는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 여성이나 남성이나 본능적으로 몹시 자신을 보이고 싶어 하는 듯합니다. 관례와 균등을 존중하는 이 기계문명시대에서 패션은 인간됨, 개성, 독특함의 최후의 은신처입니다. 제아무리 도가 지나친 혁신이라도 초라함과 단조로움으로부터 방패막이 될 수 있다면 환영 받아 마땅합니다. 물론 패션은 일시적이고 이기적인 도락이지만 현시대와 같이 음울한 이때 명품은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과거 수백 년에 걸쳐 호화로운 궁전과 성당 건축을 주문하는 등 끊임없이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왕들과 교황들이 있어왔기 때문에 유럽이 아직은 명품의 창조와 명품 생산의 진원지일 수 있다고 디올은 믿었다. “[우리는] 이름 없는 명공들로부터 유래한 장인의 전통을 계승했습니다. . . 그들은 석루조나 석조 천동을 끌로 조각하여 각자의 천재를 표현했으며 그들의 후손, 즉 숙련된 자동차 기술자, 캐비닛 제작자, 벽돌공, 배관공, 잡역부 등은 모두 각자의 전문 분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한 일이 허술하거나 일류가 아니면 이로 인해 자존심 상해합니다.”

1960년대에 일어난 이른바 젊은이의 반란(Youthquake)이 있기까지 유럽에서 일반 대중은 감히 넘보지 못하는 부자와 유명인의 영역인 명품이 그렇게 해서 존속했다. 당시 서양을 휩쓴 그 정치적 혁명으로 인해서 부자와 빈자를 가르고 있던 장벽을 비롯한 여러 사회적 장벽이 무너져 내렸다. 이때 명품은 한물갔으며, 그 후 1980년대 경제적 신흥세력인 미혼여성 관리직이 출현해서야 다시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미국식 능력주의가 활짝 꽃폈고 누구든 그리고 모든 사람이 경제적, 사회적 사다리를 오를 수 있게 되었으며, 이렇게 새로운 성공을 성취하게 되면서 사치스런 명품에 탐닉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30년 동안 선진국의 여유 소득이 상당히 증가했다. 남성이나 여성이나 모두 결혼을 뒤로 미룸으로써 자유롭게 자기 자신들을 위해서 돈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소비자는 평균적으로 그 전 세대에 비해 더 많은 교육을 받고 더 많은 여행 경험을 쌓았으며, 그럼으로써 인생의 값지고 좋은 것들에 대한 취향을 익히게 되었다.

거대 기업들과 자본가들은 그 잠재력을 보았다. 그들은 늙은 창업자들이나 무능한 상속자들로부터 명품업체들을 매입 또는 접수하여 그 업체들을 브랜드로 만들어 버리고 모든 것, 즉 매장, 유니폼, 제품, 심지어는 회의실의 커피 컵 등을 통일시켰다. 그런 다음 새로운 고객층인 중간시장에 눈길을 돌리고 그들을 광고의 대상으로 설정했다. 교사와 판매원으로부터 첨단기술 창업가와 그 사이에 있는 모든 사람들, 맥맨션*을 소유한 교외거주자, 게토 패뷸러스**, 심지어는 범죄를 통해 부자가 된 사람들을 포함하는 폭넓은 사회경제적 인구분포도가 바로 그 중간시장이다. 명품을 “민주화”시키고 “접하기 쉽도록” 한다는 것이 그 취지였다고 명품업체 간부들은 설명했다. 말은 고결해보였다. 아니, 거의 공산주의적으로 들렸다. 그러나 그들의 말뜻은 그게 아니었다. 그것은 어느 모로 보나 자본주의적인 발상이었으며, 그들의 목표는 다름이 아닌 돈을 벌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벌자는 것이었다.

거대 명품기업들은 이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서 두 방면으로 일을 착수했다. 먼저 브랜드에 대한 대대적인 과대광고를 개시했으며, 자사 제품이 명품으로서의 정통성을 내뿜는 분위기를 띠게 하기 위하여 브랜드의 역사적 유산과 장인의 전통을 널리 광고하며 과시했다. 그들은 논란을 불러일으켜서 언론에 대서특필되기 위한 목적으로 디자이너들을 독려해서 한번에 백만 달러씩 드는 흥청망청하고 도발적인 패션쇼를 하도록 하는가 하면, 수십억 달러를 써가며 의도적으로 충격을 주는 광고 캠페인을 벌였다. 디올은 핸드백 광고에 기름 범벅의 레즈비언을 실었고, 이브 생 로랑은 향수 광고에 남성의 앞을 전부 노출 시킨 누드 사진을 게재했다. 이들 브랜드들은 그와 같은 광고 전략을 통해 나이키나 포드 자동차 수준의 인지도와 보편성을 얻게 되었다. 그들은 유명인들에게 의상을 제공했고 유명인들은 각종 행사장으로 들어가는 레드 카펫 위에서 드레스, 보석, 핸드백, 턱시도, 구두 등을 어떤 회사가 제공했는지 늘어선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한다. 거대 명품기업들은 또한 세간의 이목을 끄는 스포츠나 연예 행사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명성이 있는 요트 경기인 아메리카 컵은 루이 비통이 후원하며, 고급시계 메이커인 쇼파르(Chopard)는 칸 영화제를 후원한다. “우리의 브랜드를 사면 당신도 호사스런 삶을 살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그들의 뚜렷한 속셈이었던 것이다.

그런 뒤 거대 명품기업들은 그들의 제품을 경제적으로, 또 물리적으로 구하기 쉽도록 했다. 저가의 유행 액세서리를 도입해서 누구든 살 수 있도록 했다. 원래 한 가족이 운영하던, 반들반들한 오크 패널로 도배된 매장을 확장하여 그 진출 범위를 넓혔고, 해외의 몇 안 되는 가맹점을 방대한 국제적 체인으로 확장하며 베네톤(Benetton)이나 갭(Gap)처럼 어디서나 볼 수 있고 접근하기 쉽도록 수천 개의 매장을 냈다. 재고를 할인가에 처분하기 위해 직판장을 냈고, 인터넷에 온라인 상거래를 개설했으며, 면세 소매품의 시장 점유율을 늘렸다. 2005년도 여행자의 명품 구매량은 97억 달러에 상당했는데 이것은 전세계 여행자의 전체 구매량의 3분의 1에 달하는 금액이다. 이 숫자는 앞으로 더 늘면 늘었지 줄지 않을 것이라고 여행 전문가들은 말한다. 국제민간항공기구에 의하면 전세계적 연간 항공교통량이 현재의 21억 여행자에서 2015년에는 28억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명품업체들은 세계의 증권거래소에 회사를 상장시킴으로써 판매 범위를 확장할 수 있는 자금을 얻었다. 명품업체는 주식을 공개함으로써 많은 이득을 본다. 자본 조달, 브랜드 위상의 상승, 주식매입 선택권(stock option)과 같은 경영 인센티브 조성, 보다 용이한 기업의 투명화와 이로 인해서 유입할 수 있는 보다 능력 있는 경영자 등이 그 이득이다. 그렇지만 기업은 그럼으로써 ‘매분기마다’ 이윤의 증대를 요구하는 주주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된다. “주식을 상장하면 비즈니스를 하는 방식을 바꿀 수밖에 없게 됩니다. 예산이 어떻게 지출되고 어디에 쓰이고 있는지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단기적인 결정들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데, 주주들이 그런 것들에 반응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장기적인 혜택과 단기적인 혜택을 동시에 생각하며 그 어느 쪽도 실패하지 않도록 잘 다루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치 디자이너였던 톰 포드가 내게 한 말이다.

명품업체들은 예상 수익을 달성하기 위해 비용 삭감을 해왔다. 품질이 떨어지는 재료를 쓰는 업체가 있는가 하면 비밀리에 개발도상국가에서 하청 생산을 하는 업체도 많다. 대부분의 업체들은 단일적인 수세공으로 제작하던 생산을 사람의 손은 별로 가지 않는 일관작업 생산으로 대신해왔다. 이와 동시에 대부분의 명품 업체들은 브랜드의 가격을 기하급수적으로 인상해왔으며 이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인건비가 비싼 서유럽에서 제품 생산을 한다는 허위 주장을 한다. 그들은 매출액을 한층 더 늘이기 위해 명품 브랜드의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 나일론으로 만든 화장품 케이스, 데님 핸드백 등, 싼 값에 생산한 저가 액세서리를 내놓았으며 향수와 화장품의 가짓수를 늘였다. 이 모든 것들은 대량 판매로 상당한 이윤을 가져다준다. 일반 소비자들은 분명 20만 달러짜리 디자이너 드레스를 맞춰 입을 수 있는 형편이 안 되지만 명품이 풍기는 환상과 꿈의 조각을 얻기 위해 25 달러를 주고 립스틱을 하나 산다든지 65 달러짜리 스프레이 향수는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명품업체들은 환상과 꿈을 파는 이 모든 과대광고 마케팅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주주들은 그 결과에 매우 흡족해했다. 투자금융 회사인 베어 스턴즈에 의하면 1999년 전성기의 명품 지수가 144%라는 놀라운 증대를 보였다고 한다. 분석가들은 명품 판매 수준이 2001년 9/11 사태 이전의 기록적인 수준을 곧 넘어설 것이라고 예측한다. 지금처럼 세계적으로 그렇게 부자가 많았던 적은 없었다. 메릴 린치사와 캡제미니사가 발간하는 세계부자연감의 2006년 통계에 의하면 2005년도의 백만장자의 수는 2004년에 비해 7.3%가 증가한 830만 명이었으며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은 모두 30조8000억 달러라고 한다. 스위스 은행 UBS의 재산관리부는 2005년에 760억 달러라는 새로운 돈이 예치되었으며 이 금액은 1년 만에 57%의 증가를 보인 것이라고 한다. 개인전용 공유제트기 회사인 네트제츠(NetJets)사의 매출은 2001년에서 2006년 사이에 1000%의 증가를 보았다. 민간보안 회사인 크롤(Kroll)사의 보고에 의하면 자산이 500억 달러 이상인 고객의 수가 불과 2년 만에 67% 증가했다고 한다. 그리고 "세계부자연감"은 500만에서 3000만 달러의 자산을 가진 "중간시장 백만장자"의 수가 증가했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성장의 대열에 끼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 환상과 꿈은 모두 악몽인 경우가 있다. 명품 브랜드는 현재 가장 많이 위조품 생산의 대상이 되는 부문 가운데 하나다. 세계세관기구에 의하면 패션 산업의 경우 모조품으로 인한 연간 손실은 97억 달러에 달하며 모조품에서 얻어지는 이윤은 대부분 마약밀매, 인신매매, 테러리즘 등과 같은 불법 행위의 자금으로 쓰인다고 한다.

명품은 그밖에 다른 불법행위를 유발한다. 일본여성들은 명품 브랜드 핸드백을 사기 위해 몸을 판다. 중국의 "호스티스"들은 고객과 함께 자정까지 문을 여는 명품 브랜드 매장으로 가서 고객이 사주는 명품을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받기도 한다. 다음날 아침 이들은 선물 받은 물건을 도로 반납하고 10%의 거래수수료를 제외한 금액을 현찰로 돌려받는다. 이렇게 해서 중국에서는 명품 매출액이 부풀어지게 되고 여성과 고객 사이의 거래에 현찰이 직접 개입되지 않음으로써 불법행위가 세탁되어 버린다.

2004 년 어느 여름, 프렌치 리비에라에서 점심 식사를 할 때 들은 실화다. 다름 아니라 어떤 돈 많고 세련된 뉴욕의 은행가가 어느 날 밤늦게 생 트로페에 있는 비블로 호텔의 바에서 어떤 예쁜 러시아 여성을 만났다. 그의 호텔 방에서 함께 지낸 다음날 아침 그녀는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새 구치 구두가 있었으면 정말 좋겠어요.” 그는 그녀가 매춘부라는 것을 즉각적으로 알아차리고 지갑을 꺼냈다. 그러자 그녀가 한 말: “그게 아니고 구치 구두 말예요.” 그래서 그들은 함께 쇼핑을 갔다는 얘기.

거대 기업의 마케팅 전략은 맞아떨어졌다. 오늘날 명품은 명실상부 민주적이다: 누구든 또 어디에서든, 어떤 유인 소매가격대에서든 명품을 구입할 수 있다. 2004년 일본인 소비자는 전체 명품 판매량의 41%를 팔아줬고 그 다음으로 미국인은 17%, 유럽인은 16% 정도다. 인도와 러시아, 두바이에서의 팽창은 계속되고 있으며 명품의 새로운 엘도라도인 중국도 물론 빠지지 않는다. 시안처럼 중국의 많은 지방들이 아직 먼지투성이고 황폐하지만, 씀씀이가 큰 신흥 계급이 초광속으로 출현하고 있다. 내가 중국을 방문했던 2004년 봄만 해도 중국의 시장이 성숙하지 않았으며 투자를 한다면 미래를 내다보고 하는 투자라는 것이 명품업체들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18개월 후 중국은 명품의 총판매량의 12 퍼센트를 차지했다. 그리고 이 수치는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명품업체들은 베이징과 샹하이뿐만 아니라 항쩌우(杭州), 청킹(重慶), 심지어 시안(西安) 등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제2, 제3의 도시로 매장을 늘려가고 있다. 중국은 2011년이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명품 시장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그 부를 거둬들인 것은 명품의 제왕들이다. 파리에 본사가 있는 명품 브랜드 그룹 LVMH 모에 에네시 루이 비통(Moët Hennessy Louis Vuitton)사의 회장이자 최고경영책임자인 베르나르 아르놀은 그 가운데 가장 성공한 사람이다. 포브즈(Forbes)지는 그의 개인 자산이 210억 달러 이상인 것으로 집계하고 그를 세계의 일곱 번째 부자로 지정했다. 그의 동료 주주들도 괜찮은 재미를 보고 있다. 아르놀이 LVMH의 경영권을 장악한 1990년의 매출액은 36억5000만 달러였으며 이에 대한 순익은 6억2100만 달러였는데, 2005년에는 173억2000만 달러의 매출에 17억9000만 달러의 순익을 기록했다. "내 마음에 드는 것은 창조력을 수익성으로 변환시킨다는 발상입니다. 그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아르놀이 한 말이다.

명품 산업은 사람들의 의복 양식을 바꾸어 놨으며, 경제적인 계급 체계를 재편성했다. 또한 우리들의 서로에 대한 행동 방식에 변화를 주었으며 사회 구조의 일부분이 되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 명품 산업은 명품 본래의 모습을 희생했고, 제품의 질을 저하시켰으며, 명품의 역사를 더럽혔고, 소비자를 기만했다. 거대 명품기업들은 명품을 “접하기 쉬운” 것으로 만들려다 명품을 명품답게 만든 특별한 것을 제거해버렸다.

명품은 그 빛을 잃었다.

- Dana Thomas, Deluxe: How Luxury Lost Its Luster (Penguin, 2007)
Trans. Gene
(역주)
* 맥맨션 (McMansion): 대개 미국 교외의 오래된 주택가에 낡고 작은 집을 헐고 그 자리에 건평을 넓혀 크게 지은 집. 보통 외관이 으리으리하게 보이고 빈곤한 상상력의 산물로 보이는 천편일률적인 건축 양식으로 지은 '붕어빵'식 집. 패스트푸드 체인인 맥도널드(McDonald)를 빗대 경멸적인 뉘앙스를 담아 붙인 이름.
** 케토 패뷸러스 (the ghetto fabulous): 슬럼이나 도심에서 가난하게 자라나 부유한 생활 방식을 영위하는 사람들. 대개 야하고 번쩍번쩍 빛나는 의복이나 보석 액세서리, 눈에 띄고 비싼 자동차 등을 선호함.


(데이너 토머스의 "딜럭스" 서문 1/2)

중국의 시안(西安). 먼지가 자욱한 도로. 스쿠터들이 여기저기 패인 웅덩이와 달리는 고물 자전거들을 요리조리 비껴가는가 하면, 16세기에 세워진 종탑을 돌아가며 요란한 경적을 울리는 둥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며 다닌다.

시안은 중국의 고도 중에서도 선사시대로부터 인간이 정착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다. 기원전 221년부터 서기 907년에 이르기까지 시안은 이따금 광대한 중국제국의 수도였다. 극동과 유럽을 연결하는 통상로였던 그 유명한 실크로드는 기원전 2세기에 시안에서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장안이라고 불렸던 시안은 실크로드 덕분에 거의 200만 인구가 북적대는 활기찬 대도시로 탈바꿈했으며 문화와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림과 시, 춤과 음악은 시안에서 번성을 누렸고 일상에서 세련된 생활양식은 필수 조건이었다. 정교한 사찰, 회교 사원, 붐비는 장터, 벽으로 둘러 축조한 8세기의 황궁 등 시안은 일본의 천황들이 교토와 나라 지방의 황궁 축조 모델로 삼았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당시의 시안은 국제적이고 영향력이 있던 도시로서 바그다드나 콘스탄티노플, 그리고 로마에 버금가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시안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로 간주했다.

그러나 지금 보면 그런 과거의 시안을 상상하기 힘들다. 800만 인구가 살고 있는 시안. 샹하이(上海)의 1780만, 베이징(北京)의 1500만, 청킹(重慶)의 1200만 인구에 비하면 - 중국 기준으로는 - 작은 도시다. 중국의 시장개혁 덕분에 활발한 국제적인 도시가 된 베이징이나 샹하이와는 달리 시안은 아직도 공산주의의 어두운 그림자 아래서 신음하고 있다. 빛바랜 인민복장을 많이 착용하는 시안 사람들은 억압받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수십 년이 되도록 페인트칠 한번 새로 입힌 건물은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는다. 스쿠터들은 줄이나 테이프, 그리고 희망으로 지탱하고 있다. 먼지나 그을음이 끼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중국의 새로운 부(富)는 -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 아직은 시안까지 미치지 않고 있다. 면직물, 화학약품, 하이테크 등과 같은 지역산업이 있기는 하지만 시안의 주요 산업은 광광이다. 차로 30분만 가면 빙마용(兵馬俑)이 있다. 실물 크기의 점토 병사와 병마, 모두 8천 개를 일컬어 빙마용이라 일컫는다. 친(秦)의 첫 황제인 친쉬황(秦始皇: 기원전 259-210)의 무덤에 매장되었던 빙마용은 2000년이 지난 1974년 우물을 파던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것을 보기 위해 매년 2000만 명이 넘는 - 대부분 중국인 - 관광객이 찾는 시안은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 중 하나다.

2004년 4월 나는 남편과 함께 처음으로 중국을 여행했다. 샹하이의 강변산책로(外灘: 와이탄; The Bund)에 새로 들어서는 조르조 아르마니 종합매장의 개장 행사를 취재하는 것이 나의 여행 목적이었다. 취재를 한 뒤 나는 남편과 빙마용을 보기 위해 시안으로 향했다. 시안 근교의 신축 공항에 내려 낡은 택시를 집어타고 그 역사의 중심지로 향하는 고속도로변에는 공장이, 그리고 시내의 거리에는 아파트가 줄지어 서 있었다. 그 당시 비즈니스맨들을 위한 “서양식” 호텔이 둘 있었는데 우리는 그 중 하나인 하이아트 리전시 호텔에 투숙했다. 반들반들한 대리석 로비, 화초로 가득한 홀에 서 있는데 시안이라는 말의 뜻이 “서쪽의 평화”라는 것이 생각났다. 그 호텔은 마치 미국 도심지에 있는 호텔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았다.

그 다음날 아침식사를 하러 가는 길에 있었던 일이다. 호텔의 中二層에 있는 한 작은 회의실에서 임시로 옷을 펼쳐놓고 팔고 있는 두 명의 중국 상인과 마주쳤다. 그런데 그들이 팔고 있는 것은 옷뿐만이 아니었다. 대여섯 개의 접는 테이블 위에는 구찌와 베르사체 남성용 로우퍼(끈이 없는 편한 신발), 지방쉬 남성용 셔츠와 양말, 베르사체 스웨터, 캘빈 클라인 속옷, 구치 스웨터가 펼쳐져 있었다. 이 옷들에는 "Designed in Italy"라는 상표가 붙어 있었고 한쪽 코너에는 버버리 트렌치코트도 두어 벌 걸려 있었다. 몇몇 옷가지는 얼핏 봐도 가짜라는 것이 분명했지만 몇몇 베르사체 셔츠에는 "Versace"와 같은 글자체로 "Verla"라는 레이블이 붙어 있었다. 중국 공장들이 온갖 종류의 짝퉁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우리도 이미 잘 알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어떤 물건들은 짝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진품다워 보였다. 구치 로우퍼를 집어 살펴봤다. 질이 좋은 가죽, 훌륭한 바느질, 모던한 티가 살짝 가미된 디자인 - 미국 베벌리 힐즈의 로데오 드라이브 거리나 뉴욕 매디슨 애비뉴의 구치 매장에서 볼 수 있는 구두와 다를 것이 없는 제품이었다. 버버리 제품이라고 하는 트렌치코트를 남편이 입어봤다. 그것도 역시 훌륭한 제품이었으며 구석구석 모든 세세한 부분들이 진품 버버리와 다름없었다. 가격을 물어봤다. 영어가 통하지 않았지만 그 중 20대의 날씬한 중국 여자가 계산기를 꺼내 두들기더니 $120 이라는 숫자를 찍어내 보였다. 전통적 스타일의 남성용 버버리 코트의 소매가는 보통 $850 정도다. 생각해보고 다시 들르겠다고 한 뒤 그 자리를 나와 방금 본 물건들의 출처를 알아보기 위해 호텔 안내에 들렀다. 그 물건들은 대부분 법적인 하자가 없는 것들이며, 흠이 조금 있거나 혹은 과잉 생산되었거나, 혹은 선적 컨테이너에 자리가 없어 실리지 못한 물건들이라는 것이 안내 직원의 대답이었다.

다음 날 아침 그 트렌치코트를 사기 위해 다시 그곳에 가봤지만 그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알 수 없는 일이군, 하고 나는 의아해했다.


명품 산업은 현재 알려져 있는 바에 의하면 총 1570억 달러 규모의 비즈니스로서 이에 해당하는 의류, 가죽 제품, 신발, 실크 스카프, 넥타이, 시계, 보석, 향수, 화장품은 사회적 신분과 귀족적인 삶, 즉 호사스런 삶의 상징이다. 전체 비즈니스의 60%는 35개의 주요 브랜드가 점유하고 있으며 그 나머지 40%는 수십 개의 군소업체들이 나누어 갖고 있다. 루이 비통, 구찌, 프라다, 조르조 아르마니, 에르메스, 샤넬을 비롯한 몇몇 업체들의 연간 매출액은 각각 10억 달러를 웃돈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명품 업체들은 대부분 100년 혹은 그보다 더 오래 전에 그저 일개인이 훌륭한 수공품을 만들어 파는 소규모 상점에서 비롯되었다.

오늘날 이 업체들은 여전히 창업자의 이름을 쓰고 있지만 대개의 경우 거대 기업들이 소유하거나 경영하고 있다. 그들은 지난 20여년에 걸쳐 그 소규모 업체들을 수백억 달러 규모의 비즈니스로 바꾸어 놓았고, 그 이름들은 이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국제적인 브랜드들이 되었다. 그들은 주요 도시의 번화한 거리, 공항, 아웃렛 몰 등에 매장을 집중시켜 놓고 있으며, 잡지와 대형 광고판은 온통 그들의 광고로 장식되어 있다. 그들의 주요 소비자는 30세와 50세 사이의 고소득 여성이며, 아시아에서는 소비자층의 구분을 좀더 젊은 25세부터 잡고 있다.

명품 브랜드 매장에 다가가면 귀에 무전기를 꼽고 있는 검은색 양복 차림의 남자 직원이 말없이 육중한 유리문을 열어준다. 전체적인 중색 분위기에 크롬으로 악센트를 준 미니멀리즘 양식의 멋진 실내. 고요함이 흐르는 이 매장의 실내에 들어서면 단정하고 점잖은 차림의 날씬한 판매직원이 고객을 기다리고 있다. 매장에 들어서서 제일 먼저 마주치는 것은 그 브랜드의 기본 디자인과 함께 최신 유행 패션 핸드백이 진열되어 있는 선반이다. 각 품목마다 개별적인 스포트라이트로 조명되어 있다. 유리로 된 진열함에는 모노그램이 붙어 있는 지갑(wallet), 접는 돈지갑(billfold), 명함 지갑으로 채워져 있다. 비교적 저렴하고 단순한 이 기초 상품들은 성공을 꿈꾸는 중간시장 소비자들을 겨냥한 것이다.

날씬한 판매직원들이 매상을 올리는 곳은 바로 매장의 바로 이 초입 부분이다. 명품 업체들은 계산된 마케팅 전략과 패션 잡지의 지원에 힘입어 지난 10년 동안 시즌별 핸드백이라는 현상, 즉 전세계의 소비자들이 꼭 가지고 싶도록 해서 판매실적과 주가를 치솟게 만드는 필수 명품 핸드백이라는 현상을 창조했다. 일본의 예술가 다카시 무라카미가 디자인한 스마일 체리 무늬 핸드백은 루이 비통의 두 자리 수 성장에 거의 단독적인 공헌을 했다. 핸드백의 평균 판매단가는 생산단가의 10배 내지 12배인데, 루이 비통의 경우 13배까지 이르기도 한다. 게다가 루이 비통은 절대 가격을 인하하지 않는다.

많은 명품 분점은 핸드백과 액세서리 정도만 취급하지만 본점에는 향수와 화장품을 취급하는 카운터가 밝게 조명되어 있게 마련이다. 이 본점은 업계용어로 플래그쉽(FLAGSHIP: 총판장, 주력매장)이라고 하는데 자사의 모든 제품을 구비하고 있는 매장을 일컫는다.

향수는 70년이 넘도록 명품 브랜드의 “맛보이기” 기능을 해왔다. 매장 안의 더욱 비싼 다른 상품들을 구매할 경제적 능력이 없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그 브랜드가 주는 환상과 꿈의 작은 조각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동시에 이것은 명품 브랜드 회사들에게는 대폭적인 이윤의 창구이기도 하다. 화장품도 향수와 같은 기능을 하지만 핸드백과 마찬가지로 무엇보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요소가 더 많다. 핸드백에서 샤넬 립스틱을 꺼내면 당장 돈이 많고 사교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향수와 화장품 코너를 지나면 보통 위층이나 개조된 지하실로 향하게 되어 있으며 이곳에는 대개 소량의 기성복과 구두 컬렉션이 있게 마련이다. 명품이라는 것이 아직은 소수의 최상류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친밀한 분위기에서 행해진 격조 높은 비즈니스였던 그 옛날, 유명 디자이너의 맞춤복이든 기성복이든 명품 의류를 구매한다는 것은 흡족한 기분이 들게 하는 체험이었던 적이 있었다. 흔히 패션쇼나 개인적인 추천을 통해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넓고 안락한 탈의실로 자리를 옮겨 선택한 옷들을 하나씩 느긋하게 입어보고, 고칠 곳이 있으면 손볼 수 있도록 곁에 재봉사가 대기하곤 했다.

유명 디자이너의 의상과 고급 백화점의 판매직원들은 상담자이자 마음을 터놓는 친구의 역할을 했다. 그들은 누가 어느 행사에 무엇을 입는지 알고 있었으며, 고객에게 어떤 옷이 어울리는지 알아서 그에 따른 조언을 해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와는 대조적으로 명품 브랜드 옷을 사는 체험은 인내의 훈련이다. 대개의 경우 매장에 진열되어 있는 옷가지는 얼마 되지 않고 그나마 작은 사이즈밖에 없다. 날씬한 점원들이 하는 일이란 고작 고객에게 맞는 사이즈를 찾기 위해, 혹은 매장에 진열되어 있지 않은 상품을 찾기 위해, 심지어는 아무도 보지 못한 옷을 찾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매장 뒤 창고로 사라진 뒤 10분, 15분, 20분이 지나서야 나타난다. 찾아온 것이 고객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창고로 들어가 10분이고 20분이고 또 기다리게 만드는 둥, 모두 그런 식이다. 바로 이것이 명품 업체 간부들이 생각하는 세심하고 전문적인 서비스의 모습이다.

어떤 물건을 사든지 매장을 나서는 고객이 들고 있는 종이 쇼핑백의 손잡이는 두툼하며 색은 브랜드 고유의 색상이며 쇼핑백의 양옆은 브랜드 로고로 장식되어 있다. 안에 든 물건은 박엽지로 포장되어 있게 마련이다. 만일 그것이 핸드백이나 지갑 등 기타 가죽제품이라면 부드러운 펠트 주머니에 담겨 있을 것이며, 주머니의 색깔 또한 그 브랜드의 고유 색상이기 마련이다.

- Dana Thomas, Deluxe: How Luxury Lost Its Luster (Penguin, 2007)
Trans. Gene

Sunday, May 31, 2009

장인(匠人)이라고 하면 흔히 수세공의 달인을 생각한다. 그러나 Sennett는 컴퓨터 프로그래머, 의사, 음악가, 직장인, 가정교육 등 모든 분야에 근본적으로 장인 정신이 암시/개재되어 있다고 한다. 훌륭한 기술 그 자체를 연마하고 개선하는 데에 모든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고 하면서, 명공 혹은 장인의 - 문맥에 따라 달리 쓸 수 있다 - 유래와 현재의 위치를 개관하고, 현대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올바른 장인 정신이 결여되어 있음을 지적하며 그 사례를 든다.

이윤 창출 차체에 사활을 걺으로써 극심한 경쟁에 또 경쟁이 끊임없이 연동되고 있는 新경제체제 속에서 진정한 장인 정신이 질식하고 있으며, 이것은 결국 직장인들의 사기에도 영향을 미치고 집단적인 사회 문제로 심화될 수 있다고 한다. 기업들이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장기적인 이익을 희생하고 있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현대사회 특히 ‘사오정’이나 ‘명퇴’와 같은 역겨운 말이 일반화되어 있는 한국사회에 교정적인 화제를 던질 수도 있겠다.

NYU와 The London School of Economics의 사회학 교수인 Sennett는 사회학자이기 이전에 전문적인 음악교육을 받아서인지 Stradivari의 바이올린, 명공의 작업장, 작업방식 등을 더듬어가며 손과 두뇌의 관계, 말이나 글로 전수될 수 없는 지식 등을 고찰해가며 다른 수많은 사례(Linux, Nokia, Wikipedia 등)와 함께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준다. 인상적인 사례로 건축가들의 CAD 사용에 관한 내용이 있는데, 건축가들이 CAD를 그 편리함 때문에 전폭 수용했지만 이제는 다시 손으로 그려 설계하는 건축가들이 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 이유인 즉은 손으로 일일이 그릴 때에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그는 이에 대해 매우 설득력 있는 이유를 제시하기도 한다.





“아무리 훌륭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사상은 실천된 것만이 자기의 것입니다. 단지 주장했다고 해서 그것이 자기의 사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입니다. 말이나 글로써 주장하는 것이 그 사람의 사상이 되지 못하는 까닭은 자기의 사상이 아닌 것도 얼마든지 주장하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삶 속에 실천된 것만이 자기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상의 존재 형식은 담론이 아니라 실천인 것입니다. 그 담론의 구조가 아무리 논리적이라고 하더라도 인격으로서 육화된 것이 아니면 사상이라고 명명하기 어려운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책임이 따르는 실천의 형태가 사상의 현실적 존재 형태라고 하는 것이지요. 사상은 지붕 위에서 던지는 종이비행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상의 최고 형태는 감성의 형태로 ‘가슴’에 갈무리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성은 외계와의 관계에 있어서 일차적이고 즉각적인 대응이며 그런 점에서 사고 이전의 가장 정직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성적 대응은 사명감이나 정의감 같은 이성적 대응과는 달리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마음의 움직임입니다.” (신영복 교수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

신영복 교수는 “사상의 최고 형태는 감성의 형태로 ‘가슴’에 갈무리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한편, 라르슈(L'Arche) 설립자 장 바니에는 왜 장애인들을 섬기기로 결정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이렇게 반문한다. “당신은 당신의 아내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어떤 이유로 그리했습니까?”

그것이 진정 사랑이었다면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고 이전에 일어난 가장 정직한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마음의 움직임이었다는 얘기다.

나는 20년 전에 매킨토시 클래식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컴퓨터를 도구로 사용해야 하는 일을 해왔지만 가상공간이 제공하는 대부분의 역할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다. 기계의 속성으로 인하여 피할 수 없는 허위의식에 구축되는 세계가 바로 가상공간인 까닭에 회의적이다. 필요한 정보를 전에 없이 손쉽게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기계보다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에 어떠한 긍정적 기여를 하는지 별로 발견하지 못한다.

新보수주의, 新자유주의의 눈에 보이지 않는 억압에 저항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 되고 있으며, 정보공유의 마당으로서의 역할을 마땅히 수행해내고 있고 이 분야에 많은 잠세력이 있지만, 인성 고양이라는 측면에서는 회의적이다. 그러나 상정하는 내용의 질과 이에 대한 반응 방식에 진정성이 있다면 어느 정도 긍정적인 열매를 맺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가정적인 결론을 내리고 싶다. 그리고 진정성이 있기만 하다면 극히 드물지만 가슴과 가슴이 만나는 통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Saturday, May 30, 2009


먼저 익숙하기도 하고 매력적인기도 하면서 달갑지 않은 막연한 오한 증상이 그 전조로서 다가온다. 그 다음 감상적인 느낌이 가시적 세상을 뒤덮고, 이 느낌을 통하여 그것의 색채와 윤곽이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짙어지고 선명해진다. . . 리처드 휴즈의 "자메이카의 광풍 A High Wind in Jamaica" 은 - 환각과 열병적인 상태가 이 책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 어린 시절 병들었을 때의 육체적인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실로 이 책은 우리가 잊었다고 생각한 (또는 그랬기를 바라는) 어린 시절의 많은 기억을 생각나게 함과 동시에 우리 어른들이 많은 공을 들여 구축해놓은 도덕관념 체계를 교묘한 이지를 발휘하여 분해한다.

이 책은 서인도 제도의 폐허가 된 가옥들, 노예 숙소, “지진, 화재, 비, 그리고 더 지독한 초목”에 의하여 민주적으로 균등하게 된 (폐허가 된) 대저택을 배경으로 시작하면서, 도금 시계와 도살된 닭의 피가 묻은 깃털들 가운데 하인들에 의하여 아사餓死를 당하게 되는 연로한 두 파커 자매의 끔찍한 ‘카메오 출연’을 잠깐 다룬다.

정경은 소름끼치고 몽환적이지만 소설의 언어는 섬세하고 적확하다 - 話者에게는 유머러스하고 경쾌한 머리 씀이 있다. 독자는 어조와 내용 사이의 부조화를 바로 인식하게 되고 이로 인하여 마음이 교란된다. 그러나 이것은 휴즈가 말하고자 하는 충격적인 이야기에 중추적인 것임이 드러난다.

“자메이카의 광풍”은 표면적으로는 해적들에게 잡힌 영국 어린이 다섯 명에 관한 모험 이야기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쾌활한 놀이에 잠복해 있는 것은 살인, 이유 없는 폭력, 고딕 풍의 성적 표출, 변덕스런 배반 등이며, 케이트 그린웨이의 그림보다는 “국외자”였던 예술가 헨리 다저의 그림이 더 생각나는 이야기다.

독자가 바스쏜튼 가족을 처음 만나는 곳은 그들이 살고 있는 자메이카다. 손튼 씨는 “모종의 일”에 관계하고 있다. 아이들은 각자 자기들 나름대로의 할일이 있으며, 이 일이란 대부분 그 섬의 운 나쁜 토착 동물들이 처해지게 되는 연속적인 잔인함과 관련이 있다.

이 “영국 어린이들의 낙원”에서 장남인 존은 반 야생적 애완 고양이 태비의 미각적 즐거움과 오락을 위하여 쥐를 잡는데, 이 고양이는 고양이대로 독사들과의 사투를 즐긴다. 세 딸 가운데 맏이인 에밀리의 아주 독특한 경험과 자의식이 이 소설의 중심에 있으며, 이 아이는 “집 도마뱀들을 잡되, 도마뱀들이 겁을 먹을 때 스스로 꼬리를 끊지 않도록 하며 잡는 일을 아주 재미있어 한다. 이 아이의 방에는 도마뱀들과 여러 애완동물들로 가득하며, 살아 있는 것들도 있지만 보나마나 죽어 있을 것 같은 것들도 있다.”

쏜튼 가의 아이들의 영역은 야생으로 돌아간 아이들이라고 할 만치 부모들의 영역과 동떨어져 있으며 다르다. 쏜튼 부부는 자식들이 어떤 아이들인지, 또는 그들이 내면으로 실연하는 뜨겁고 고조된 흥분의 드라마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이와 같은 종류의 생활은 매우 평화스러웠으며 존과 같이 신경이 과민한 아이들에게는 좋을지 모른다. 그러나 신경과민과는 거리가 먼 에밀리 같은 아이에게는 정말이지 어떤 자극과 흥분이 필요한데,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몽매에서 깨어나지 못할 위험이 있다. 이 생활은 너무 단조롭다.”

태풍으로 - 이것보다는 천둥과 번개가 치는 와중에 살쾡이들에게 쫓겨 집으로 들어왔다가 결국 살아남지 못하는 태비의 사건이 아이들의 주의를 독차지한다 - 집의 지붕이 날아가고 나서야 쏜튼 부부는 섬 생활이 확실히 아이들에게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자식들을 영국에 보내기 위하여 크로린다라는 배에 태운다.

소설이 이 시점에 이를 때쯤이면 우리는 이미 휴즈에 의하여 조건 반응에 처해지게 된다. 즉, 어떤 동물이 등장할 때마다 우리는 최악의 사태를 맞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게 된다. 하지만 이 보호적인 반사 운동조차도 클로린다의 선원들이 애완 원숭이의 암에 걸린 꼬리를 잘라내려고 하는 소름끼치는 장면에 대비한 마음의 준비를 해주지 못한다.

뒤따르는 혼란 상황의 와중에 배는 해적들에게 점령당하고 모두 사로잡히는 신세가 된다. 뿐만 아니라 이 일 이후 서커스 사자와 호랑이를 싸움 붙이려는 폭동적인 시도에 해적들이 흥겹게 몰두하는 동안 벌어지는 잔인함에도 마음을 무장시키주지 못한다.

소설 전편에 걸쳐 자연과 인간의 본성은 모두 악하고 위협적이다. 동물의 肉感은 - 에밀리가 수영을 할 때 "수백 마리의 새끼 물고기들이 에밀리의 몸 구석구석을 탐색적인 입질로, 즉 일종의 가벼운 키스 행위로 간지럼 태우고 있었다" - "혐오스럽다." 지는 태양은 - "야릇하게 무언가 위협적인 듯 현저하게 커다랗고 붉어" - 약탈적이고 변태적인 듯하다.

아이들 자신들은 본질적으로 "악마적인 이스트"가 번식하는 살아 있는 페트리 접시들이며, 우리는 실수를 잘하는 해적들을 처음에는 좋아하는데, 이것은 비열한 장면들에 의하여 삭감된다. 술에 취한 존슨 선장이 에밀리에 대하여 보이는 음산한 관심의 표현은 에밀리로 하여금 자기 방어로 그의 손가락을 깨물게 하며 또 선장은 나중에는 자고 있는 어린아이들을 들여다보면서, 에밀리가 아직 깨어서 지켜보고 있는 것을 알고, 어린 로라의 위로 향하고 가리지 않은 엉덩이에 그의 손톱을 가볍게 튀긴다.

휴즈는 세상과 그 세상 거주자들에 대한 깜짝 놀랄 불편한 진리를 깊이 논하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그가 “자메이카의 狂風”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수행하는 것 중의 하나는 어린아이에 대한 낭만적인 관념에 - 워즈워드적인 순진함밖에 모르는 아이들에 대한 관념에 - 사악이라는 관점을 부가한다. 그는 아이들이 어른들보다도 더 자연에 가깝다고, 섹스에 대한 아이들의 관점이 - 신비스럽고, 매혹적이고, 불가해하고, 불쾌하고, 불가사의한 관계의 원인, 그리고 그보다 더 이상하게 보이는 행동의 원인이 되는 - 섹스의 진짜 모습을 보는 관점이라는 것이다.

클로린다 호를 포획하는 데 일조한 야하고 "재잘대는" 드래그 퀸들의 직접적인 실제, 또는 애완용 악어와 함께 자게 되는 에밀리, 또는 해적들이 쿠바에 들를 때 뚱뚱하고 수염이 난 늙은 여자가 어린 에드워드를 잡고 숨이 막힐 정도로 퍼붓는 키스 등에 비해, 서로 동의하는 어른들의 정욕은 예의를 갖춘 인습이다. ("에드워드는 보아 구렁이에게 잡힌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 불길한 여자는 마치 진짜 보아 구렁이인 것처럼 에드워드를 노려보아 꼼짝 못하게 했다. 에드워드는 무기력하게, 그리고 자의식을 느끼며 그녀의 팔에 안겨 낙담해 있었다. 그러나 거기서 벗어나려는 적극적인 생각은 하지 못했다.")

에밀리와 선장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나중에 해적들이 아이들을 내어놓은 증기선의 - 아이들은 이 배로 영국에 가게 된다 - 매혹적인 선객 루이사 도슨과의 관계에서 경험하는 혼동과 매혹, 공포와 위로는, 키스하는 새끼 물고기들과의 조우가 그랬던 것처럼, 매력과 반감이 교차하는 다형적인 영역에 속한다. 선장은 어린 사내아이가 할 법한 일종의 성적인 낙서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한번은 그가 에밀리가 침상 옆 벽에 연필로 그려놓은 그림에 덧그림을 그린다:

존슨은 두 가지 그림밖에 그릴 줄 아는 것이 없었다. 배, 그리고 여자의 나체... 그는 펜들을 들었다. 그리고 이내 에밀리가 그린 서툴고 불확실한 선들 틈으로 둥그스름한 허벅지, 둥그스름한 배, 높이 부푼 가슴 등이 드러나기 시작했으며 모두 다소 루벤스적인 작풍이었다.

어른이 어린 소녀의 낙서를 개작하는 장면은 육감에 대한 어린아이의 왜곡된 시각을 상기시키는 당혹스럽고 감각적인 예각을 내포한다. 여기에 기묘한 순진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더욱 더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어른의 성적인 관심이 어린아이의 것처럼 건전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진다면 어른의 도덕심은 결코 더 성숙하다거나 혹은 더 발달되었다고 볼 수 없으리라. 거짓말하지 않고 유독한 비밀을 지니지 않은 사람은 없다. 아이들은 특히 그렇다. ("어른들은 상당한 불안감을 가지고 속임의 인생을 살며 이것은 대개 성공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어린이들의 경우는 다르다. 어린이는 가장 소름끼치는 비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감출 수 있으며 실제적으로 그 비밀을 탐지당할 위험이 없다.")

어떤 연령이든 사람들은 누구든 다 거의 정신병적으로 사적이고 개인적인 일련의 도덕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다: 속옷을 언급한다거나 어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옳지 않지만, 기도를 할 때 하나님에게 거짓말을 한다거나, 중죄를 심의하는 법정에서 판사가 배심원을 오도하는 것은 용납되는 것이다 (또는 특기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다지 기억을 지니는 사람은 없다. 아이들은 부모들과의 이별에 신속하게 적응하고, 그들 가운데 있었던 죽음의 충격으로부터 놀랄 만큼 쉽고 융통성 있게 회복한다.

책이 끝나갈 때쯤, 아이들의 시련에 대하여 어른들이 그들에게 해주는 이야기는 (어른들 자신들은 진리에 거의 혹은 전혀 관심하다)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아이들의 의식과 뒤섞이거나 그것을 대체해버린다. 우리는 소설의 마지막을 차지하는 재판을 주재하는 법률가들을 만나게 될 때 이 정의와 고고한 문명의 대리자들이라는 사람들이 해적들에게 법복과 가발을 씌워놓은 것과 별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휴즈가 교묘하게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그들이 세상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는 정반대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사실에 관심을 갖는 쪽은 소설가이며, 소설가들의 일은 어떤 특정한 사람이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무엇을 행했는지 말하는 것이다. 법률가들은 추정되는 상황 하에서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개연성이 있는지의 여부를 보여주는 것 이상은 생각하지 않으며 또 그러리라는 기대를 받지 않는다."

간혹 이 소설에 비교되지만 이보다는 훨씬 더 단순한 윌리엄 골딩의 "파리의 대왕"과는 달리 리처드 휴즈의 소설은 어떤 도덕적이거나 사회적인 교훈, 통념적인 지혜나 불쾌한 진실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시도를 물리친다. 사실 이 책처럼 조금이라도 위안이나 위로 부스러기를 던져 주기를, 그리고 또 정직이나 선행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인물을 단 한 사람이라도 제시하기를 그렇게 유쾌하게 거부하는 소설을 생각하기 쉽지 않다.

결국 이 총명하고 비범한 소설에 담겨 있는 모든 것은 우리가 그래야 하리라고 생각하는 것, 혹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에 그만큼 그 반대여서 우리는 정신적인 혼란에 빠진다 - 사물의 본모습과 사물이 어떠해야 하리라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 효과는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아름다우며, 몽환적이지만 동시에 섬뜩할 정도로 실재 그대로이기도 하다. 역사가 순진과 악함을 논하는 말 자체를 영원히 바꾸어버린 사건들을 준비하고 있던 1929년에 출판된 "자메이카의 광풍"은 위험과 피, 즉 (말하자면 풍문에) 미래의 위험과 피의 경고의 냄새를 맡은 선견지명이 있는 예술 작품의 하나이다.

- Francine Prose
Trans. Gene

Friday, May 29, 2009




도움이 되려는 의도와는 달리 나는 나도 모르게 자꾸 다른 사람들을 콘트롤하려고 한다. 즉, 조언을 해줄 때는 조언한 대로 지켜지는지 알고 싶어한다. 도움을 줄 때는 감사를 받고 싶어한다. 돈을 내놓을 때는 그 돈이 내 방식대로 쓰이기를 원한다. 뭔가 좋은 일을 하면 이 일로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기를 바란다. 동상이 세워지기는 커녕 기념패도 받지 못하겠지만, 잊혀지지 않고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 속에서 계속 존재하기를 바라며 마음이 쓰인다.
(…)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줄 수 있을까? 조건 없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의 인정과 애정을 받고자 하는 나의 끝없는 욕구를 생각하면, 이것은 내가 평생 씨름해야 할 일임을 깨닫는다. 그렇지만 이와 함께 내가 확신하는 것은, 그러한 욕구를 이겨내고, 대가를 바라는 마음에 구애받지 않고 행하는 매 순간마다, 진정 내 삶은 [진정한 영정인]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다

Henri Nouwen,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New York: Doubleday, 1992), pp. 127-128.
Trans. Gene

Thursday, May 28, 2009




꽃집에서 거리의 훈훈한 바람을 타고 온 꽃향기
꿈속에 본 그녀의 형상이 되어 내 시야를 막았어요
함께 타고 온 지중해의 테라코타 빛 선율은
나를 터키석 옥색 바다를 실어 날랐고
나는 그윽한 그리움의 조류에 떠 어디론가 한 없이 흘러갔어요


Wednesday, May 27, 2009

어린아이가 나중에 계시처럼
그리 많은 일을 기억하는 것은
어쩌면 윤이 나는 가구에 반사된
불꽃 정도의 기억일지 몰라요

그리고 성인이 되었을 때 하루가
다른 날들처럼 상처를 준다면
어떤 위험을 약속으로
잘못 보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는 넘쳐흐르는 가슴으로
복잡해져 부재를 향해
그를 끌어당긴 음악도
빼놓고 얘기 안 할 수 없지요

- Rainer Maria Rilke, Fire's Reflection
Trans. Gene

Tuesday, May 26, 2009


한때 나는 꽃의 언어를 말했다
한때 나는 풀쐐기가 말한 모든 말을 이해했다
한때 나는 찌르레기의 잡담을 들으며 몰래 웃었으며
침대에 누워 집파리와 대화를 했다
한때 나는 귀뚜라미의 질문을 모두 듣고 대답했으며
떨어지며 죽어가는 눈송이와 함께 울었다
한때 나는 꽂의 언어를 말했다
어떻게 했더라?
어떻게 했더라?


- Shel Silverstein, Forgotten Language
Trans. Gene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 가고 싶다
나는 그 대가를 계산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녀가 나를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 알고 싶지 않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 가고 싶다

- Bertolt Brecht, I Want To Go With The One I Love
Trans.
Gene

Monday, May 25, 2009




때가 되었으니
곧 날이 저물고
당신은 어느 머나 먼 해변
내 말이 들릴 거에요

여름 해가 길 듯이
포도주처럼 짙은 바다의 깊음같이
나는 당신이 올 때까지 당신의 가슴을
내 가슴속에 간직할 거에요

나는 그곳에서 새처럼 높이
창공을 날아 갈 거에요
태양의 찬란한 빛을 향해 날아
그곳에서 당신을 찾을 거에요

그리고 우리의 꿈이 잔잔해지는 밤에
바람이 자유로이 부는 밤에
나는 당신이 올 때까지 당신의 가슴을
내 가슴속에 간직할 거에요

- Loreena McKennitt, Penelope's Song
Trans. Gene




여름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 들판으로 나가자
추수 때가 다가옴이며 태양의 시선이
곡물을 여물게 하고 있음이라
땅의 열매를 돌보자
우리 가슴속 깊이 뿌려진 사랑의 씨앗에서
잉태된 기쁨의 곡물에 영혼이 자양분을 주듯
땅의 과일을 돌보자
삶이 자신의 다함없는 풍요로 우리 가슴의
영역을 풍족하게 채우듯
자연의 산물로 우리의 저장고를 가득 채우자
꽃 더미를 침대 삼고 하늘을 이불 삼아
부드러운 건초 베개에 우리의 머리를 나란히 뉘이자
하루의 수고 후에 쉼을 얻고
시냇물의 그침 없는 두런거림에 귀를 기울이자

- Khalil Gibran, The Life of Love XVI
Trans. Gene





자,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 동산에 거닐자
눈은 물이 되었고 생명은 긴 잠에서 깨어
숨쉬며 언덕과 계곡을 거닐고 있음이니
봄의 발자국을 따라 먼 들판으로 가자
언덕 정상에 올라 높은 곳에서
청록색 평야를 굽어보며 영감을 얻자

봄의 새벽은 겨우내 보관한 의복을 펼쳐
복숭아나무 밀감나무에 걸쳐 놓으니
케드레의 밤 전통의식의 신부처럼 보임이라

자, 사랑하는 사람아, 열린 백합꽃에서 겨울의
마지막 눈물을 받아 마시고 새들이 쏟아 붓는
선율의 소나기로 우리의 영혼을 달래자 그리고
도취적인 미풍을 헤치며 황홀함 가운데 거닐자

제비꽃들이 숨어 있는 곳, 저 바위 옆에 앉아
꽃들이 주고받는 달콤한 키스를 추구하자

- Khalil Gibran, The Life of Love XVI
Trans. Gene

Sunday, May 24, 2009




나는 연인의 눈 영혼의
포도주 가슴의 자양분
나는 장미꽃 내 가슴은
새벽에 열리며 처녀가
내게 키스하고 나를
자신의 가슴에 얹지요

나는 진정한 행운의 집
즐거움의 원천 평화와
평온의 시작 나는 아름다운
입술에 퍼지는 잔잔한 미소
젊음이 나를 따라잡으면 그
수고를 잊고 전 인생은
달콤한 꿈들의 현실이 되지요

나는 시인의 희열
예술가의 계시
음악가의 영감

나는 자비로운 엄마의 사랑을 받는
어린아이 가슴속 성전

나는 가슴의 부르짖음에는 모습을 나타내지만
요구에는 몸을 피하고 나의 충만함은
가슴의 욕구를 찾아가며 입으로 구하는
공허한 요구는 피해가지요

나는 이브를 통해 아담에게 모습을 나타냈고
추방은 그의 운명이었어요
그래도 나는 솔로몬에게 내 자신을 드러냈으며
그는 내가 있음에서 지혜를 끌어내었지요

나는 헬레나에게 미소했고 그녀는 타와다를 멸망시켰죠
하지만 나는 클레오파트라에게 왕관을 씌워주었으며
평화는 나일강 계곡을 지배했어요

나는 오늘은 세우고 내일은 허무는
시대와 같아요
나는 신과 같아서 창조하고 파괴하지요
나는 제비꽃의 한숨보다 더 달콤하고
노도와 같은 폭풍보다 더 난폭해요

선물만으로는 나를 유혹할 수 없어요
나는 이별한다고 낙담하지 않아요
가난은 나를 쫓지 않아요
질투는 내가 의식함을 입증하지 못해요
광기는 내가 있음의 증거가 되지 못해요

오, 구도자들이여. 나는 진리에요, 애원하는 진리에요
나를 추구하고 받아들이고 보호하는 그대들의 진리가
나의 행동을 결정짓게 될 것이에요

Khalil Gibran, Song of Love xxiv
Trans. Gene

나는 사자의 뱃속에서
이 시를 쓰고 있어요
이 안은 그래서 좀 어두운데
내 글씨가 삐뚤 해도 양해해주세요
나는 유감스럽게도 오늘 오후
사자 우리에 너무 가까이 갔어요
그리고 이 시를
사자의 뱃속에서 쓰고 있는데
이 안은 좀 어두워요

- Shel Silverstein, It's Dark in Here.
Trans. Gene

당신은 인생이라는
심포니의 음악

당신은 이른 아침
평온한 고독과 고요의
음악 당신은 내 가슴속
노래

당신은 해안의 음악
파도의 울림
바다의 힘
공기의 소금

당신은 군중 가운데 음악
도심 소리의 코러스임은
나의 노래
나의 음악이기 때문

당신은 새 날을 시작하며 드는
내 생각의 음악
베개에 얼굴을 묻고
눈을 감으며 보는 마지막 이미지

당신은 잠이라 불리는
비밀스런 장소의 음악
인생의 수많은 노래 가운데
어둠의 빛깔과 솜털 구름을 헤치며
내가 찾는 것은 바로 당신

내가 당신을 생각할 때 음악은
끊임이 없고 영원해요 내 인생
매순간 빠짐없이 그리고
최후의 수면이 찾아올 때 그때
음악이 있다면 나는 당신을 생각할 거예요

- Joe Fazio, You Are My Music
Trans. Gene

Saturday, May 23, 2009




오늘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다

즉 이런 것이다. “밤하늘에 별이 가득하고
파란 별들은 멀리에서 떨고 있다.”

밤바람이 하늘에서 돌며 노래 부른다

오늘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도 때론 나를 사랑했다

오늘밤 같은 밤이면 나는 그녀를 품에 안고
광대한 하늘 아래 수없이 키스를 했다

그녀는 나를 사랑했고 이따금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의 커다랗고 잔잔한 눈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오늘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다
그녀가 내게 없다고 생각하면! 그녀를 잃었다는 느낌이란!

광대한 밤, 그녀가 없어 더욱 광대한 밤의 소리를 듣는 것이란!
이슬이 풀잎에 듣듯 시가 영혼에 떨어진다

나의 사랑으로 그녀를 붙잡아둘 수 없다면 어떠한가?
밤하늘에 별이 가득하고 그녀는 내 곁에 없다

그게 전부다. 멀리 저 멀리 누군가 노래한다. 멀리 저 멀리
내 가슴이 그녀를 찾고 그녀는 내 곁에 없다

같은 나무를 희게 하는 같은 밤
우리, 그전의 우리는 더 이상 같은 우리가 아니다

나는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하지만 얼마나 사랑했던가
내 목소리가 바람에 스며들어 그녀의 귀에 닿았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귀에. 그녀는 한때 내 키스에 속했듯이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속할 것이다
그녀의 음성, 그녀의 경쾌한 몸, 그녀의 무한한 눈

나는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맞다
하지만 어쩌면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사랑은 너무 짧고 망각은 너무 길다

오늘밤과 같은 밤이면 나는 그녀를 품에 안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없자 내 영혼은 길을 잃었다

이것이 그녀가 내게 주는 마지막 아픔인지 모른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그녀를 위해 쓰는 마지막 시일지 모른다

- Pablo Neruda, The Saddest Poem
Trans. Gene

그건 오래 전 일
나는 내 꿈을 거의 잊었다
하지만 그때는 꿈이
거기 내 앞에 있었다
태양처럼 빛났던
나의 꿈
그런데 나와 꿈 사이에
벽이 세워졌다
벽은 천천히
천천히 세워지기 시작했고
하늘까지 닿았다

그늘
나는 흑인이다
나는 그늘에 앉았다
내 앞이나 머리 위에나
내 꿈의 빛은 더 이상 없다
두꺼운 벽이 있을 뿐
그늘이 있을 뿐
내 손아
내 검은 손아
벽을 깨고
내 꿈을 찾아주렴
이 어둠을 부수고
이 밤을 박살내고
그늘을 찢어
만 갈래 햇빛으로
태양의 현기증 나는
만 갈래 꿈이 비치도록!

- Langston Hughes, As I Grew Older
Trans. Gene




꿈꾸는 이여,
그대의 꿈을 모두 내게 가져오세요
그대 가슴의 멜로디를
모두 내게 가져오세요
나는 그것들을
파랑색 구름 보자기에 잘 싸서
거칠고 거친 세상의 손가락이
미치지 못하는 곳 멀리에 두려고 해요

- Langston Hughes, The Dream Keeper
Trans. Gene

겁을 먹었고 두들겨 맞았어요
바람은 내 희망을 흩뜨렸고
눈은 나를 얼렸고
태양은 나를 구웠어요

그들은 작당을 하고
내가 웃지 못하게, 사랑하지 못하게
살지 못하게 하려 했나 봐요
하지만 괜찮아요!
나는 아직 지금 이렇게 존재해요!

- Langston Hughes, Still Here
Trans. Gene
사랑은
보라색 나무에 맺히는
익은 자두
한번 맛보면
그 황홀함의 마력이
당신을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 거에요

사랑은
남국의 하늘에 빛나는
밝은 별
너무 뚫어지게 쳐다보면
그 강렬한 빛은 반드시
당신의 눈을 상하게 할 거에요

사랑은
바람 많은 하늘에
우뚝 솟은 높은 산
숨차고 싶지 않으면
너무 높이 오르지 마세요

- Langston Hughes, Love Song for Lucinda
Trans. Gene
희망이 유예되면 어떻게 되지요?
햇볕에 내어놓은
건포도처럼 말라버리나요?
아니면 종기처럼 곪아
터져버리나요?
썩은 고기처럼 악취가 나나요?
아니면 시럽처럼
굳어져 각질이 되나요?
어쩌면 무거운 짐처럼
축 처질지 몰라요.
아니면 폭발할까요?

- Langston Hughes, Dream Deferred
Trans. Gene

Friday, May 22, 2009




고독은 선을 위한 힘이 될 수 있지만 긍정적이지 않은 모습을 띌 때가 더 많다. 그것은 무감동과 우울증의 원천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심지어는 죽고 싶은 욕구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내면의 고통과 공허감을 잊으려는 나머지 현실 도피나 중독에 내몰리기도 한다. 고독은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나 지체가 부자유한 사람들에게서 무감동의 형태로 나타난다.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들에서 고독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절망에서 잉태된 “남은 게 무엇이지?”라는 의문을 품는다.

- Jean Vanier, Becoming Human (Paulist Press, 1998), p. 8.
Trans. Gene
몸이 건강한 사람, 왕성하게 일하는 사람, 성공적인 사람에게 고독은 없는 듯 보인다. 하지만 고독은 인성에 본질적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고독은 가려질 뿐, 사실은 없어지지 않는다. 고독은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요소다.

고독은 창조적 에너지, 즉 새 것을 창조하거나 더욱 깊은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길로 우리를 내모는 에너지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예술가, 시인, 신비주의자, 선지자, 세상이나 사회 관습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고독하기 쉽다. 그들은 자신들이 다르다고 느낀다. 현재의 상태와 평범함에 만족하지 못한다. 많은 에너지가 덧없고 부질없는 것들에 퍼부어지는 경쟁 사회에 불만을 느낀다. 불의에 맞서 일어나고 새로운 길을 찾는 사람들은 흔히 고독한 사람들이다. 마치 어떤 불길이 그들의 내면에 타오르고 있는 듯하다. 이 불길의 연료는 고독이다.

- Jean Vanier, Becoming Human (Paulist Press, 1998), pp. 7-8.
Trans. Gene

Thursday, May 21, 2009




미풍이 수면을 스치고
물은 다리에 걸친 빛을 반사하고
빛은 당신의 눈에 반짝여요

무언가 새로운 것에 대한 상쾌하고 대담한 느낌
사랑이 곁에 있어 겨울은 녹아 흐르는 봄이 되고
여름은 형태를 이루고 무르익어요

꽃피는 나무의 꽃잎은 여름에 내리는 눈처럼
키스하는 우리 주변에 떠돌고 있어요
한 번, 두 번, 그리고 영원히

당신은 그저 나의 빛이 아니에요

당신은 나의 태양이에요

Sara McDermott
Trans. Gene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녀(ㅎ/ㅈ)를 위해 무엇을 해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것은 훨씬 더 심오하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녀에게 그/녀의 가치와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그/녀를 이해하는 것, 그/녀의 부르짖음과 몸짓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녀가 있음을,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냄을, 그/녀와 소통함을 기뻐하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가슴과 가슴이 만나 가슴과 가슴이 서로 주고받는 관계의 삶을 사는 것이다.

- Jean Vanier, Seeing Beyond Depression (Paulist Press, 2001), p. 19.
Trans. Gene

Wednesday, May 20, 2009


나는 오랜 세월 내 인생이
시작되기를 기다렸어요
버스정류장에서 서서
멀리 커브 길을 응시하며
지나가는 버스가 모두
내가 탈 버스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내 인생이 시작되기를 기다렸어요
책을 펴고 책에 파묻혀
여행 가방 없이 페이지에서
페이지로 이동하며
책장이 넘어가며 부스럭 소리
책장 바람만이 있는 책에 파묻혀
수없는 인생들이 색색의 난폭한 태양에
나타났다 지는 책에 파묻혀
내 인생이 시작되기를 기다렸어요

내 인생은 때론 기침을 하곤 했어요
고장으로 멈춘 엔진이 다시 시동 걸리려 하듯 했지요
내가 원했던 건 언제나 다른 사람이었지만
누군가를 팔에 안곤 했어요
혹은 아무 버스나 올라타고는
어딜 가는지 아는 사람들의 허벅지와 팔꿈치에
떠밀렸어요. 그리고 훗날 내 인생을
찾으러 갈 공책에 언어의 단편들을
새의 노래처럼 적어 넣었어요

Linda Pastan, Waiting for My Life
Trans. Gene

Tuesday, May 19, 2009




. . .

새벽을,
나는 동이 트기를 기다려야 한다
새로운 인생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포기해서는 안된다
새벽이 오면
오늘밤도 기억으로 남을 것이며
새로운 날이 시작될 것이다
. . .

당신이 나를 만질 때
행복이 무엇인지 이해할 거에요


Daylight,
I must wait for the sunrise,
I must think of a new life.
And I musn't give in
When the dawn comes.
Tonight will be a memory too
And a new day will begin.

. . .

If you touch me
You'll understand what happiness 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