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너 토머스의 "딜럭스" 서문 2/2)
복장은 개성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인 지위와 자긍심을 반영한다. 명품 치장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가르며 언제나 피라미드의 상부에 위치해왔다. 실크, 금과 은, 보석과 준보석, 모피 등 명품의 특징적인 요소들은 인류가 수천 년에 걸쳐 문화적으로 승인하고 추구해 온 것들이다. 선사시대의 인류는 뼈나 깃털 같은 것들로 모피를 장식함으로써 자신을 돋보이게 했다. 페르시아인과 이집트인은 기원전 2세기 전부터, 중국인은 1만 2000년이나 오래된 옛날부터 실크 자수로 외관을 꾸몄다.
호사품의 과시는 힘과 업적을 의미했으며 조롱과 부럼의 대상이 되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제이 폴 게티 박물관(J. Paul Getty Museum)의 고대유물 담당 큐레이터인 케네스 라파틴에 의하면, 호사품이 낭비냐 아니냐 하는 논의는 기원전 700년 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에트루리아인들은 몸에 금을 둘렀으며 발트해 연안 제국으로부터 앰버를 수입했고, 벽옥이나 홍옥수와 같이 조각된 아름다운 보석을 지니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시대의 사회 보수주의자들에 의하면 바로 이 같은 호사품에 대한 기호가 그들을 몰락으로 이끌었다고 한다.
라파틴의 설명에 의하면 그리스의 귀족들은 “겉모양으로 시선을 끌기를 좋아해서 금과 화려한 옷을 착용하고 다녔으며 일반 대중들이 이것을 모방하곤 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부자들은 일반 서민들과 구별되고 그저 더 돋보이기 위해서라도 더욱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게 되었다. 통치자들은 사치 금지법, 즉 의복과 귀금속 및 기타 사치품과 관련해서 부의 과시 정도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하여 평민들이 귀족들을 모방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과시적 소비를 억제하려 했다. “어떤 지역에서는 신전에 귀금속을 지니고 가면 그것을 제물로 바치고 나와야 했으며, 지니고 있던 사치품을 신들에게 헌납하면서 종종 자신의 이름을 쓰거나 꼬리표를 달아, 누가 바친 것인지 알도록 표시를 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이 신전에서 그 물건을 보면 봉헌자의 훌륭한 미적 감각과 대범함에 찬탄을 보내곤 했다.” 사치품인 것처럼 속이는 것은 최악의 불명예로 간주되었다. 그리스의 조각가 피디아스가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에 값싼 재료인 금도금 대리석으로 아테네 여신상을 조각하겠다고 했지만 아테네 의회에서 이 제안을 거부했다는 고대의 전설이 있다. “창피한 줄 알라”고 의원들은 소리를 질렀고 금과 상아를 재료로 써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과시하고 싶은 마음만 있었지 돈을 아끼려는 생각은 없었다”고 라파틴은 말한다.
오늘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대로의 호사품, 즉 명품의 유래는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와 보나파르트 가문의 통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루이 비통, 에르메스, 카티에 등 우리가 애용하는 여러 명품 브랜드는 18세기나 19세기에 이름 없는 장인들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이들은 왕실용으로 상상할 수 있는 최상의 아름다운 물건들을 만들었다. 19세기 후반, 군주제의 붕괴와 산업을 통한 부의 증가를 통해 명품은 본래 예로부터 대대로 돈이 있는 유럽의 귀족이나 미국의 밴더빌트가, 애스터가, 위트니가 등 배타적인 상류사회의 영역이 되었다. 신분에 어울리는 사교클럽에 들어가는 것처럼, 또는 그 가문의 이름을 이어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명품은 상류사회의 자연스러운 일부분, 즉 늘 그래왔고 또 예정되어 있는 일부분이었다. 그리고 명품은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극히 제한된 상류 고객들을 대상으로 소량 생산되었으며 주문 생산도 흔히 있는 일이었다. “내가 젊었을 때는 보그(Vogue)지에 난 종류의 옷을 입은 사람치고 부엌에 뭐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보그의 편집장이었던 다이애너 브릴런드(Diana Vreeland)가 자신의 자서전 “D.V.”에서 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 패션의 아버지라고 여기는 크리스티앙 디오르(Christian Dior)는 1957년 타임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현대사회에서의 명품의 중요성에 대해 음미하며 이렇게 말했다: “난 철학자는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 여성이나 남성이나 본능적으로 몹시 자신을 보이고 싶어 하는 듯합니다. 관례와 균등을 존중하는 이 기계문명시대에서 패션은 인간됨, 개성, 독특함의 최후의 은신처입니다. 제아무리 도가 지나친 혁신이라도 초라함과 단조로움으로부터 방패막이 될 수 있다면 환영 받아 마땅합니다. 물론 패션은 일시적이고 이기적인 도락이지만 현시대와 같이 음울한 이때 명품은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과거 수백 년에 걸쳐 호화로운 궁전과 성당 건축을 주문하는 등 끊임없이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왕들과 교황들이 있어왔기 때문에 유럽이 아직은 명품의 창조와 명품 생산의 진원지일 수 있다고 디올은 믿었다. “[우리는] 이름 없는 명공들로부터 유래한 장인의 전통을 계승했습니다. . . 그들은 석루조나 석조 천동을 끌로 조각하여 각자의 천재를 표현했으며 그들의 후손, 즉 숙련된 자동차 기술자, 캐비닛 제작자, 벽돌공, 배관공, 잡역부 등은 모두 각자의 전문 분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한 일이 허술하거나 일류가 아니면 이로 인해 자존심 상해합니다.”
1960년대에 일어난 이른바 젊은이의 반란(Youthquake)이 있기까지 유럽에서 일반 대중은 감히 넘보지 못하는 부자와 유명인의 영역인 명품이 그렇게 해서 존속했다. 당시 서양을 휩쓴 그 정치적 혁명으로 인해서 부자와 빈자를 가르고 있던 장벽을 비롯한 여러 사회적 장벽이 무너져 내렸다. 이때 명품은 한물갔으며, 그 후 1980년대 경제적 신흥세력인 미혼여성 관리직이 출현해서야 다시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미국식 능력주의가 활짝 꽃폈고 누구든 그리고 모든 사람이 경제적, 사회적 사다리를 오를 수 있게 되었으며, 이렇게 새로운 성공을 성취하게 되면서 사치스런 명품에 탐닉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30년 동안 선진국의 여유 소득이 상당히 증가했다. 남성이나 여성이나 모두 결혼을 뒤로 미룸으로써 자유롭게 자기 자신들을 위해서 돈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소비자는 평균적으로 그 전 세대에 비해 더 많은 교육을 받고 더 많은 여행 경험을 쌓았으며, 그럼으로써 인생의 값지고 좋은 것들에 대한 취향을 익히게 되었다.
거대 기업들과 자본가들은 그 잠재력을 보았다. 그들은 늙은 창업자들이나 무능한 상속자들로부터 명품업체들을 매입 또는 접수하여 그 업체들을 브랜드로 만들어 버리고 모든 것, 즉 매장, 유니폼, 제품, 심지어는 회의실의 커피 컵 등을 통일시켰다. 그런 다음 새로운 고객층인 중간시장에 눈길을 돌리고 그들을 광고의 대상으로 설정했다. 교사와 판매원으로부터 첨단기술 창업가와 그 사이에 있는 모든 사람들, 맥맨션*을 소유한 교외거주자, 게토 패뷸러스**, 심지어는 범죄를 통해 부자가 된 사람들을 포함하는 폭넓은 사회경제적 인구분포도가 바로 그 중간시장이다. 명품을 “민주화”시키고 “접하기 쉽도록” 한다는 것이 그 취지였다고 명품업체 간부들은 설명했다. 말은 고결해보였다. 아니, 거의 공산주의적으로 들렸다. 그러나 그들의 말뜻은 그게 아니었다. 그것은 어느 모로 보나 자본주의적인 발상이었으며, 그들의 목표는 다름이 아닌 돈을 벌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벌자는 것이었다.
거대 명품기업들은 이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서 두 방면으로 일을 착수했다. 먼저 브랜드에 대한 대대적인 과대광고를 개시했으며, 자사 제품이 명품으로서의 정통성을 내뿜는 분위기를 띠게 하기 위하여 브랜드의 역사적 유산과 장인의 전통을 널리 광고하며 과시했다. 그들은 논란을 불러일으켜서 언론에 대서특필되기 위한 목적으로 디자이너들을 독려해서 한번에 백만 달러씩 드는 흥청망청하고 도발적인 패션쇼를 하도록 하는가 하면, 수십억 달러를 써가며 의도적으로 충격을 주는 광고 캠페인을 벌였다. 디올은 핸드백 광고에 기름 범벅의 레즈비언을 실었고, 이브 생 로랑은 향수 광고에 남성의 앞을 전부 노출 시킨 누드 사진을 게재했다. 이들 브랜드들은 그와 같은 광고 전략을 통해 나이키나 포드 자동차 수준의 인지도와 보편성을 얻게 되었다. 그들은 유명인들에게 의상을 제공했고 유명인들은 각종 행사장으로 들어가는 레드 카펫 위에서 드레스, 보석, 핸드백, 턱시도, 구두 등을 어떤 회사가 제공했는지 늘어선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한다. 거대 명품기업들은 또한 세간의 이목을 끄는 스포츠나 연예 행사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명성이 있는 요트 경기인 아메리카 컵은 루이 비통이 후원하며, 고급시계 메이커인 쇼파르(Chopard)는 칸 영화제를 후원한다. “우리의 브랜드를 사면 당신도 호사스런 삶을 살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그들의 뚜렷한 속셈이었던 것이다.
그런 뒤 거대 명품기업들은 그들의 제품을 경제적으로, 또 물리적으로 구하기 쉽도록 했다. 저가의 유행 액세서리를 도입해서 누구든 살 수 있도록 했다. 원래 한 가족이 운영하던, 반들반들한 오크 패널로 도배된 매장을 확장하여 그 진출 범위를 넓혔고, 해외의 몇 안 되는 가맹점을 방대한 국제적 체인으로 확장하며 베네톤(Benetton)이나 갭(Gap)처럼 어디서나 볼 수 있고 접근하기 쉽도록 수천 개의 매장을 냈다. 재고를 할인가에 처분하기 위해 직판장을 냈고, 인터넷에 온라인 상거래를 개설했으며, 면세 소매품의 시장 점유율을 늘렸다. 2005년도 여행자의 명품 구매량은 97억 달러에 상당했는데 이것은 전세계 여행자의 전체 구매량의 3분의 1에 달하는 금액이다. 이 숫자는 앞으로 더 늘면 늘었지 줄지 않을 것이라고 여행 전문가들은 말한다. 국제민간항공기구에 의하면 전세계적 연간 항공교통량이 현재의 21억 여행자에서 2015년에는 28억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명품업체들은 세계의 증권거래소에 회사를 상장시킴으로써 판매 범위를 확장할 수 있는 자금을 얻었다. 명품업체는 주식을 공개함으로써 많은 이득을 본다. 자본 조달, 브랜드 위상의 상승, 주식매입 선택권(stock option)과 같은 경영 인센티브 조성, 보다 용이한 기업의 투명화와 이로 인해서 유입할 수 있는 보다 능력 있는 경영자 등이 그 이득이다. 그렇지만 기업은 그럼으로써 ‘매분기마다’ 이윤의 증대를 요구하는 주주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된다. “주식을 상장하면 비즈니스를 하는 방식을 바꿀 수밖에 없게 됩니다. 예산이 어떻게 지출되고 어디에 쓰이고 있는지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단기적인 결정들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데, 주주들이 그런 것들에 반응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장기적인 혜택과 단기적인 혜택을 동시에 생각하며 그 어느 쪽도 실패하지 않도록 잘 다루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치 디자이너였던 톰 포드가 내게 한 말이다.
명품업체들은 예상 수익을 달성하기 위해 비용 삭감을 해왔다. 품질이 떨어지는 재료를 쓰는 업체가 있는가 하면 비밀리에 개발도상국가에서 하청 생산을 하는 업체도 많다. 대부분의 업체들은 단일적인 수세공으로 제작하던 생산을 사람의 손은 별로 가지 않는 일관작업 생산으로 대신해왔다. 이와 동시에 대부분의 명품 업체들은 브랜드의 가격을 기하급수적으로 인상해왔으며 이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인건비가 비싼 서유럽에서 제품 생산을 한다는 허위 주장을 한다. 그들은 매출액을 한층 더 늘이기 위해 명품 브랜드의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 나일론으로 만든 화장품 케이스, 데님 핸드백 등, 싼 값에 생산한 저가 액세서리를 내놓았으며 향수와 화장품의 가짓수를 늘였다. 이 모든 것들은 대량 판매로 상당한 이윤을 가져다준다. 일반 소비자들은 분명 20만 달러짜리 디자이너 드레스를 맞춰 입을 수 있는 형편이 안 되지만 명품이 풍기는 환상과 꿈의 조각을 얻기 위해 25 달러를 주고 립스틱을 하나 산다든지 65 달러짜리 스프레이 향수는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명품업체들은 환상과 꿈을 파는 이 모든 과대광고 마케팅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주주들은 그 결과에 매우 흡족해했다. 투자금융 회사인 베어 스턴즈에 의하면 1999년 전성기의 명품 지수가 144%라는 놀라운 증대를 보였다고 한다. 분석가들은 명품 판매 수준이 2001년 9/11 사태 이전의 기록적인 수준을 곧 넘어설 것이라고 예측한다. 지금처럼 세계적으로 그렇게 부자가 많았던 적은 없었다. 메릴 린치사와 캡제미니사가 발간하는 세계부자연감의 2006년 통계에 의하면 2005년도의 백만장자의 수는 2004년에 비해 7.3%가 증가한 830만 명이었으며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은 모두 30조8000억 달러라고 한다. 스위스 은행 UBS의 재산관리부는 2005년에 760억 달러라는 새로운 돈이 예치되었으며 이 금액은 1년 만에 57%의 증가를 보인 것이라고 한다. 개인전용 공유제트기 회사인 네트제츠(NetJets)사의 매출은 2001년에서 2006년 사이에 1000%의 증가를 보았다. 민간보안 회사인 크롤(Kroll)사의 보고에 의하면 자산이 500억 달러 이상인 고객의 수가 불과 2년 만에 67% 증가했다고 한다. 그리고 "세계부자연감"은 500만에서 3000만 달러의 자산을 가진 "중간시장 백만장자"의 수가 증가했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성장의 대열에 끼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 환상과 꿈은 모두 악몽인 경우가 있다. 명품 브랜드는 현재 가장 많이 위조품 생산의 대상이 되는 부문 가운데 하나다. 세계세관기구에 의하면 패션 산업의 경우 모조품으로 인한 연간 손실은 97억 달러에 달하며 모조품에서 얻어지는 이윤은 대부분 마약밀매, 인신매매, 테러리즘 등과 같은 불법 행위의 자금으로 쓰인다고 한다.
명품은 그밖에 다른 불법행위를 유발한다. 일본여성들은 명품 브랜드 핸드백을 사기 위해 몸을 판다. 중국의 "호스티스"들은 고객과 함께 자정까지 문을 여는 명품 브랜드 매장으로 가서 고객이 사주는 명품을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받기도 한다. 다음날 아침 이들은 선물 받은 물건을 도로 반납하고 10%의 거래수수료를 제외한 금액을 현찰로 돌려받는다. 이렇게 해서 중국에서는 명품 매출액이 부풀어지게 되고 여성과 고객 사이의 거래에 현찰이 직접 개입되지 않음으로써 불법행위가 세탁되어 버린다.
2004 년 어느 여름, 프렌치 리비에라에서 점심 식사를 할 때 들은 실화다. 다름 아니라 어떤 돈 많고 세련된 뉴욕의 은행가가 어느 날 밤늦게 생 트로페에 있는 비블로 호텔의 바에서 어떤 예쁜 러시아 여성을 만났다. 그의 호텔 방에서 함께 지낸 다음날 아침 그녀는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새 구치 구두가 있었으면 정말 좋겠어요.” 그는 그녀가 매춘부라는 것을 즉각적으로 알아차리고 지갑을 꺼냈다. 그러자 그녀가 한 말: “그게 아니고 구치 구두 말예요.” 그래서 그들은 함께 쇼핑을 갔다는 얘기.
거대 기업의 마케팅 전략은 맞아떨어졌다. 오늘날 명품은 명실상부 민주적이다: 누구든 또 어디에서든, 어떤 유인 소매가격대에서든 명품을 구입할 수 있다. 2004년 일본인 소비자는 전체 명품 판매량의 41%를 팔아줬고 그 다음으로 미국인은 17%, 유럽인은 16% 정도다. 인도와 러시아, 두바이에서의 팽창은 계속되고 있으며 명품의 새로운 엘도라도인 중국도 물론 빠지지 않는다. 시안처럼 중국의 많은 지방들이 아직 먼지투성이고 황폐하지만, 씀씀이가 큰 신흥 계급이 초광속으로 출현하고 있다. 내가 중국을 방문했던 2004년 봄만 해도 중국의 시장이 성숙하지 않았으며 투자를 한다면 미래를 내다보고 하는 투자라는 것이 명품업체들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18개월 후 중국은 명품의 총판매량의 12 퍼센트를 차지했다. 그리고 이 수치는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명품업체들은 베이징과 샹하이뿐만 아니라 항쩌우(杭州), 청킹(重慶), 심지어 시안(西安) 등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제2, 제3의 도시로 매장을 늘려가고 있다. 중국은 2011년이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명품 시장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그 부를 거둬들인 것은 명품의 제왕들이다. 파리에 본사가 있는 명품 브랜드 그룹 LVMH 모에 에네시 루이 비통(Moët Hennessy Louis Vuitton)사의 회장이자 최고경영책임자인 베르나르 아르놀은 그 가운데 가장 성공한 사람이다. 포브즈(Forbes)지는 그의 개인 자산이 210억 달러 이상인 것으로 집계하고 그를 세계의 일곱 번째 부자로 지정했다. 그의 동료 주주들도 괜찮은 재미를 보고 있다. 아르놀이 LVMH의 경영권을 장악한 1990년의 매출액은 36억5000만 달러였으며 이에 대한 순익은 6억2100만 달러였는데, 2005년에는 173억2000만 달러의 매출에 17억9000만 달러의 순익을 기록했다. "내 마음에 드는 것은 창조력을 수익성으로 변환시킨다는 발상입니다. 그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아르놀이 한 말이다.
명품 산업은 사람들의 의복 양식을 바꾸어 놨으며, 경제적인 계급 체계를 재편성했다. 또한 우리들의 서로에 대한 행동 방식에 변화를 주었으며 사회 구조의 일부분이 되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 명품 산업은 명품 본래의 모습을 희생했고, 제품의 질을 저하시켰으며, 명품의 역사를 더럽혔고, 소비자를 기만했다. 거대 명품기업들은 명품을 “접하기 쉬운” 것으로 만들려다 명품을 명품답게 만든 특별한 것을 제거해버렸다.
명품은 그 빛을 잃었다.
- Dana Thomas, Deluxe: How Luxury Lost Its Luster (Penguin, 2007)
Trans. Gene
(역주)
* 맥맨션 (McMansion): 대개 미국 교외의 오래된 주택가에 낡고 작은 집을 헐고 그 자리에 건평을 넓혀 크게 지은 집. 보통 외관이 으리으리하게 보이고 빈곤한 상상력의 산물로 보이는 천편일률적인 건축 양식으로 지은 '붕어빵'식 집. 패스트푸드 체인인 맥도널드(McDonald)를 빗대 경멸적인 뉘앙스를 담아 붙인 이름.
** 케토 패뷸러스 (the ghetto fabulous): 슬럼이나 도심에서 가난하게 자라나 부유한 생활 방식을 영위하는 사람들. 대개 야하고 번쩍번쩍 빛나는 의복이나 보석 액세서리, 눈에 띄고 비싼 자동차 등을 선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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