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une 1, 2009

(데이너 토머스의 "딜럭스" 서문 1/2)

중국의 시안(西安). 먼지가 자욱한 도로. 스쿠터들이 여기저기 패인 웅덩이와 달리는 고물 자전거들을 요리조리 비껴가는가 하면, 16세기에 세워진 종탑을 돌아가며 요란한 경적을 울리는 둥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며 다닌다.

시안은 중국의 고도 중에서도 선사시대로부터 인간이 정착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다. 기원전 221년부터 서기 907년에 이르기까지 시안은 이따금 광대한 중국제국의 수도였다. 극동과 유럽을 연결하는 통상로였던 그 유명한 실크로드는 기원전 2세기에 시안에서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장안이라고 불렸던 시안은 실크로드 덕분에 거의 200만 인구가 북적대는 활기찬 대도시로 탈바꿈했으며 문화와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림과 시, 춤과 음악은 시안에서 번성을 누렸고 일상에서 세련된 생활양식은 필수 조건이었다. 정교한 사찰, 회교 사원, 붐비는 장터, 벽으로 둘러 축조한 8세기의 황궁 등 시안은 일본의 천황들이 교토와 나라 지방의 황궁 축조 모델로 삼았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당시의 시안은 국제적이고 영향력이 있던 도시로서 바그다드나 콘스탄티노플, 그리고 로마에 버금가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시안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로 간주했다.

그러나 지금 보면 그런 과거의 시안을 상상하기 힘들다. 800만 인구가 살고 있는 시안. 샹하이(上海)의 1780만, 베이징(北京)의 1500만, 청킹(重慶)의 1200만 인구에 비하면 - 중국 기준으로는 - 작은 도시다. 중국의 시장개혁 덕분에 활발한 국제적인 도시가 된 베이징이나 샹하이와는 달리 시안은 아직도 공산주의의 어두운 그림자 아래서 신음하고 있다. 빛바랜 인민복장을 많이 착용하는 시안 사람들은 억압받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수십 년이 되도록 페인트칠 한번 새로 입힌 건물은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는다. 스쿠터들은 줄이나 테이프, 그리고 희망으로 지탱하고 있다. 먼지나 그을음이 끼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중국의 새로운 부(富)는 -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 아직은 시안까지 미치지 않고 있다. 면직물, 화학약품, 하이테크 등과 같은 지역산업이 있기는 하지만 시안의 주요 산업은 광광이다. 차로 30분만 가면 빙마용(兵馬俑)이 있다. 실물 크기의 점토 병사와 병마, 모두 8천 개를 일컬어 빙마용이라 일컫는다. 친(秦)의 첫 황제인 친쉬황(秦始皇: 기원전 259-210)의 무덤에 매장되었던 빙마용은 2000년이 지난 1974년 우물을 파던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것을 보기 위해 매년 2000만 명이 넘는 - 대부분 중국인 - 관광객이 찾는 시안은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 중 하나다.

2004년 4월 나는 남편과 함께 처음으로 중국을 여행했다. 샹하이의 강변산책로(外灘: 와이탄; The Bund)에 새로 들어서는 조르조 아르마니 종합매장의 개장 행사를 취재하는 것이 나의 여행 목적이었다. 취재를 한 뒤 나는 남편과 빙마용을 보기 위해 시안으로 향했다. 시안 근교의 신축 공항에 내려 낡은 택시를 집어타고 그 역사의 중심지로 향하는 고속도로변에는 공장이, 그리고 시내의 거리에는 아파트가 줄지어 서 있었다. 그 당시 비즈니스맨들을 위한 “서양식” 호텔이 둘 있었는데 우리는 그 중 하나인 하이아트 리전시 호텔에 투숙했다. 반들반들한 대리석 로비, 화초로 가득한 홀에 서 있는데 시안이라는 말의 뜻이 “서쪽의 평화”라는 것이 생각났다. 그 호텔은 마치 미국 도심지에 있는 호텔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았다.

그 다음날 아침식사를 하러 가는 길에 있었던 일이다. 호텔의 中二層에 있는 한 작은 회의실에서 임시로 옷을 펼쳐놓고 팔고 있는 두 명의 중국 상인과 마주쳤다. 그런데 그들이 팔고 있는 것은 옷뿐만이 아니었다. 대여섯 개의 접는 테이블 위에는 구찌와 베르사체 남성용 로우퍼(끈이 없는 편한 신발), 지방쉬 남성용 셔츠와 양말, 베르사체 스웨터, 캘빈 클라인 속옷, 구치 스웨터가 펼쳐져 있었다. 이 옷들에는 "Designed in Italy"라는 상표가 붙어 있었고 한쪽 코너에는 버버리 트렌치코트도 두어 벌 걸려 있었다. 몇몇 옷가지는 얼핏 봐도 가짜라는 것이 분명했지만 몇몇 베르사체 셔츠에는 "Versace"와 같은 글자체로 "Verla"라는 레이블이 붙어 있었다. 중국 공장들이 온갖 종류의 짝퉁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우리도 이미 잘 알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어떤 물건들은 짝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진품다워 보였다. 구치 로우퍼를 집어 살펴봤다. 질이 좋은 가죽, 훌륭한 바느질, 모던한 티가 살짝 가미된 디자인 - 미국 베벌리 힐즈의 로데오 드라이브 거리나 뉴욕 매디슨 애비뉴의 구치 매장에서 볼 수 있는 구두와 다를 것이 없는 제품이었다. 버버리 제품이라고 하는 트렌치코트를 남편이 입어봤다. 그것도 역시 훌륭한 제품이었으며 구석구석 모든 세세한 부분들이 진품 버버리와 다름없었다. 가격을 물어봤다. 영어가 통하지 않았지만 그 중 20대의 날씬한 중국 여자가 계산기를 꺼내 두들기더니 $120 이라는 숫자를 찍어내 보였다. 전통적 스타일의 남성용 버버리 코트의 소매가는 보통 $850 정도다. 생각해보고 다시 들르겠다고 한 뒤 그 자리를 나와 방금 본 물건들의 출처를 알아보기 위해 호텔 안내에 들렀다. 그 물건들은 대부분 법적인 하자가 없는 것들이며, 흠이 조금 있거나 혹은 과잉 생산되었거나, 혹은 선적 컨테이너에 자리가 없어 실리지 못한 물건들이라는 것이 안내 직원의 대답이었다.

다음 날 아침 그 트렌치코트를 사기 위해 다시 그곳에 가봤지만 그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알 수 없는 일이군, 하고 나는 의아해했다.


명품 산업은 현재 알려져 있는 바에 의하면 총 1570억 달러 규모의 비즈니스로서 이에 해당하는 의류, 가죽 제품, 신발, 실크 스카프, 넥타이, 시계, 보석, 향수, 화장품은 사회적 신분과 귀족적인 삶, 즉 호사스런 삶의 상징이다. 전체 비즈니스의 60%는 35개의 주요 브랜드가 점유하고 있으며 그 나머지 40%는 수십 개의 군소업체들이 나누어 갖고 있다. 루이 비통, 구찌, 프라다, 조르조 아르마니, 에르메스, 샤넬을 비롯한 몇몇 업체들의 연간 매출액은 각각 10억 달러를 웃돈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명품 업체들은 대부분 100년 혹은 그보다 더 오래 전에 그저 일개인이 훌륭한 수공품을 만들어 파는 소규모 상점에서 비롯되었다.

오늘날 이 업체들은 여전히 창업자의 이름을 쓰고 있지만 대개의 경우 거대 기업들이 소유하거나 경영하고 있다. 그들은 지난 20여년에 걸쳐 그 소규모 업체들을 수백억 달러 규모의 비즈니스로 바꾸어 놓았고, 그 이름들은 이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국제적인 브랜드들이 되었다. 그들은 주요 도시의 번화한 거리, 공항, 아웃렛 몰 등에 매장을 집중시켜 놓고 있으며, 잡지와 대형 광고판은 온통 그들의 광고로 장식되어 있다. 그들의 주요 소비자는 30세와 50세 사이의 고소득 여성이며, 아시아에서는 소비자층의 구분을 좀더 젊은 25세부터 잡고 있다.

명품 브랜드 매장에 다가가면 귀에 무전기를 꼽고 있는 검은색 양복 차림의 남자 직원이 말없이 육중한 유리문을 열어준다. 전체적인 중색 분위기에 크롬으로 악센트를 준 미니멀리즘 양식의 멋진 실내. 고요함이 흐르는 이 매장의 실내에 들어서면 단정하고 점잖은 차림의 날씬한 판매직원이 고객을 기다리고 있다. 매장에 들어서서 제일 먼저 마주치는 것은 그 브랜드의 기본 디자인과 함께 최신 유행 패션 핸드백이 진열되어 있는 선반이다. 각 품목마다 개별적인 스포트라이트로 조명되어 있다. 유리로 된 진열함에는 모노그램이 붙어 있는 지갑(wallet), 접는 돈지갑(billfold), 명함 지갑으로 채워져 있다. 비교적 저렴하고 단순한 이 기초 상품들은 성공을 꿈꾸는 중간시장 소비자들을 겨냥한 것이다.

날씬한 판매직원들이 매상을 올리는 곳은 바로 매장의 바로 이 초입 부분이다. 명품 업체들은 계산된 마케팅 전략과 패션 잡지의 지원에 힘입어 지난 10년 동안 시즌별 핸드백이라는 현상, 즉 전세계의 소비자들이 꼭 가지고 싶도록 해서 판매실적과 주가를 치솟게 만드는 필수 명품 핸드백이라는 현상을 창조했다. 일본의 예술가 다카시 무라카미가 디자인한 스마일 체리 무늬 핸드백은 루이 비통의 두 자리 수 성장에 거의 단독적인 공헌을 했다. 핸드백의 평균 판매단가는 생산단가의 10배 내지 12배인데, 루이 비통의 경우 13배까지 이르기도 한다. 게다가 루이 비통은 절대 가격을 인하하지 않는다.

많은 명품 분점은 핸드백과 액세서리 정도만 취급하지만 본점에는 향수와 화장품을 취급하는 카운터가 밝게 조명되어 있게 마련이다. 이 본점은 업계용어로 플래그쉽(FLAGSHIP: 총판장, 주력매장)이라고 하는데 자사의 모든 제품을 구비하고 있는 매장을 일컫는다.

향수는 70년이 넘도록 명품 브랜드의 “맛보이기” 기능을 해왔다. 매장 안의 더욱 비싼 다른 상품들을 구매할 경제적 능력이 없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그 브랜드가 주는 환상과 꿈의 작은 조각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동시에 이것은 명품 브랜드 회사들에게는 대폭적인 이윤의 창구이기도 하다. 화장품도 향수와 같은 기능을 하지만 핸드백과 마찬가지로 무엇보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요소가 더 많다. 핸드백에서 샤넬 립스틱을 꺼내면 당장 돈이 많고 사교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향수와 화장품 코너를 지나면 보통 위층이나 개조된 지하실로 향하게 되어 있으며 이곳에는 대개 소량의 기성복과 구두 컬렉션이 있게 마련이다. 명품이라는 것이 아직은 소수의 최상류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친밀한 분위기에서 행해진 격조 높은 비즈니스였던 그 옛날, 유명 디자이너의 맞춤복이든 기성복이든 명품 의류를 구매한다는 것은 흡족한 기분이 들게 하는 체험이었던 적이 있었다. 흔히 패션쇼나 개인적인 추천을 통해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넓고 안락한 탈의실로 자리를 옮겨 선택한 옷들을 하나씩 느긋하게 입어보고, 고칠 곳이 있으면 손볼 수 있도록 곁에 재봉사가 대기하곤 했다.

유명 디자이너의 의상과 고급 백화점의 판매직원들은 상담자이자 마음을 터놓는 친구의 역할을 했다. 그들은 누가 어느 행사에 무엇을 입는지 알고 있었으며, 고객에게 어떤 옷이 어울리는지 알아서 그에 따른 조언을 해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와는 대조적으로 명품 브랜드 옷을 사는 체험은 인내의 훈련이다. 대개의 경우 매장에 진열되어 있는 옷가지는 얼마 되지 않고 그나마 작은 사이즈밖에 없다. 날씬한 점원들이 하는 일이란 고작 고객에게 맞는 사이즈를 찾기 위해, 혹은 매장에 진열되어 있지 않은 상품을 찾기 위해, 심지어는 아무도 보지 못한 옷을 찾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매장 뒤 창고로 사라진 뒤 10분, 15분, 20분이 지나서야 나타난다. 찾아온 것이 고객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창고로 들어가 10분이고 20분이고 또 기다리게 만드는 둥, 모두 그런 식이다. 바로 이것이 명품 업체 간부들이 생각하는 세심하고 전문적인 서비스의 모습이다.

어떤 물건을 사든지 매장을 나서는 고객이 들고 있는 종이 쇼핑백의 손잡이는 두툼하며 색은 브랜드 고유의 색상이며 쇼핑백의 양옆은 브랜드 로고로 장식되어 있다. 안에 든 물건은 박엽지로 포장되어 있게 마련이다. 만일 그것이 핸드백이나 지갑 등 기타 가죽제품이라면 부드러운 펠트 주머니에 담겨 있을 것이며, 주머니의 색깔 또한 그 브랜드의 고유 색상이기 마련이다.

- Dana Thomas, Deluxe: How Luxury Lost Its Luster (Penguin, 2007)
Trans. G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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