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막히는 외로움 (1)
외로움이라는 고통스러운 경험에 돌입하는 것은 절대로 쉬운 게 아니다. 우리는 외로움이라면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그것은 인생의 어느 순간, 누구에게든 닥치는 경험이다. 어렸을 때 눈이 사시라고 같은 반 친구들의 놀림을 받았을 때 느꼈을 수도 있고, 고등학교 시절에 들고 싶은 운동부에 들지 못해 그랬을 수도 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모두가 학점 얘기나 하고 좋은 친구는 찾기 힘들었던 경험이 있을 수 있다. 혹은 어떤 운동단체에 가담했을 때 아무도 자신의 제안에 귀기울이 않았던 경험이 있을 수도 있다. 선생이라면 자신이 공들여 준비한 강의에 학생들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게 느껴지는 경험이 있을지 모른다. 목사나 신부라면 좋은 뜻으로 행하는 자신의 설교를 들으며 조는 사람들을 보고 외로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직장생활에서 일상적으로 갖는 회의에서, 학회에서, 상담시간에, 기나긴 사무실 근무시간에, 단조로운 노동을 하며, 혹은 혼자 책을 읽을 때 지속적으로 집중해서 읽을 수 없는 책에서 눈을 떼고 다른 데를 쳐다보며 그런 느낌을 가질지 모른다. 사실상 인간이라면 거의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와 유사한 - 혹은 그보다는 더욱 극적인 - 상황에 놓이게 마련이다. 이 때, 내면에 그 이상한 좀먹는 듯한 느낌, 그 정신적인 공허감, 그 마음을 어지럽히는 불안감을 느끼며 “외롭다”는 생각을 한다.
. . .
우리가 처해진 현대사회는 외로움을 더욱 예리하게 느끼게 한다. 우리는 가장 친밀한 관계마저도 경쟁과 겨룸의 부분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살고 있다.
- Henri J.M. Nouwen, Reaching Out (Doubleday, 1986), pp. 23-24.
Trans. G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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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June 13, 2009
Friday, May 29, 2009

도움이 되려는 의도와는 달리 나는 나도 모르게 자꾸 다른 사람들을 콘트롤하려고 한다. 즉, 조언을 해줄 때는 조언한 대로 지켜지는지 알고 싶어한다. 도움을 줄 때는 감사를 받고 싶어한다. 돈을 내놓을 때는 그 돈이 내 방식대로 쓰이기를 원한다. 뭔가 좋은 일을 하면 이 일로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기를 바란다. 동상이 세워지기는 커녕 기념패도 받지 못하겠지만, 잊혀지지 않고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 속에서 계속 존재하기를 바라며 마음이 쓰인다.
(…)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줄 수 있을까? 조건 없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의 인정과 애정을 받고자 하는 나의 끝없는 욕구를 생각하면, 이것은 내가 평생 씨름해야 할 일임을 깨닫는다. 그렇지만 이와 함께 내가 확신하는 것은, 그러한 욕구를 이겨내고, 대가를 바라는 마음에 구애받지 않고 행하는 매 순간마다, 진정 내 삶은 [진정한 영정인]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다
Henri Nouwen,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New York: Doubleday, 1992), pp. 127-128.
Trans. Gene
Friday, April 3, 2009
Wednesday, March 18, 2009

사랑하기를 주저하지 말자. 깊이 사랑하기를 주저하지 말자. 깊이 사랑하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아픔을 두려워하지 말자. 내가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거나, 떠나거나 죽으면 가슴이 아프겠지만, 그렇다고 깊이 사랑하기를 주저하지 말자. 깊이 사랑해서 받는 아픔으로 인해 사랑은 보다 풍부한 결실을 맺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씨앗이 뿌리를 내려 튼튼한 식물로 자랄 수 있도록 땅을 갈아주는 쟁기와 같다. 무시당하는 아픔, 빈자리를 바라보는 아픔, 혹은 죽음의 아픔을 겪게 될 때마다 나는 어떤 결정을 해야 한다. 분하거나 쓰라린 마음으로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든지, 아니면 그 아픔 가운데 나 자신을 곧추 세워 두발 딛고 일어나, 내가 서 있는 땅이 더욱 비옥해져서 새로운 씨앗에 생명을 줄 수 있도록 하든지, 그 둘 중 하나다.
사랑하면 할수록, 또한 더욱 더 그 사랑으로 인해 받는 아픔에 나 자신을 내맡길수록, 나의 마음은 더욱 넓어지고 더욱 깊어져갈 것이다. 내 사랑이 참되게 주고 참되게 받는 사랑일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비록 몸은 떠날지라도 내 마음은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내 자신의 일부가 될 것이며 점차 내 안에서 한 공동체를 이루어갈 것이다.
내가 깊이 사랑한 사람들은 내 일부분이 될 것이다. 살아갈수록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그만큼 더 많이 만나게 될 것이며, 그들은 나의 내적인 공동체를 이룰 것이다. 내적인 공동체가 커짐에 따라 주변의 낯선 사람들에게서 내 형제를 볼 것이요 내 자매를 보게 될 것이다. 마음속의 공동체가 커감에 따라 외적인 공동체도 커갈 것이다. 이렇듯 무시당하는 아픔, 빈자리를 바라보는 아픔, 혹은 죽음의 아픔은 풍부한 결실을 맺을 수 있다. 깊이 사랑함에 따라 내 마음의 땅은 점점 더 쟁기질로 갈아질 것이지만, 나는 그 땅이 산출하는 풍부한 결실을 기뻐하게 될 것이다.
- Henri Nouwen, The Inner Voice of Love (New York: Doubleday, 1998), pp. 59-60.
Trans. Gene
Monday, March 16, 2009
수많은 사람들이 당하는 고문에 관한 글을 읽으면,
나는 과연 정신적, 혹은 육체적 압박을
얼마나 오래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흔히 갖는다.
그럴 때마다 내가 얼마나 약[한지]... 깨닫게 된다.
...
나의 존재 가치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주변 사람들로부터 만족을 얻으려 하게 마련이고,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그 어떠한 형태의 고통에도 쉽게 굴복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지지와 인정을 받으려 하는 필요로부터 서서히
나 자신을 분리해내고...
나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때...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하는 욕구나,
사람들이 주는 상처와 고통은
나의 내면의 중심을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
수도원장과 나는 고문과 세뇌에 관해 잠시 얘기를 나눴다.
그가 정신과 의사로서 일할 때 만난 어떤 사람의 얘기를 들었는데,
전쟁 포로였던 그 사람은 많은 고문을 당했지만
고문에 전혀 굴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적이고 현실적이며 단순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그 사람은
정치나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어떠한 압력도 그의 입을 열게 할 수 없었다.
수도원장은 그 사람이 가졌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지적함으로써
그 현상을 설명했다. 그를 고문한 적군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자기에 대한 회의감, 불안감, 그릇된 죄의식이 그에게는 없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런 단순함을,
그런 내면적인 자아의식을,
자기의 가치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겠냐는 질문에 수도원장은 이와같이 대답했다.
"깊이 묵상하세요. 그리고
당신의 불안감이 작용하는 모든 작은 일상사들을
묵상하는 가운데
면밀히 탐색하세요.
묵상을 통해서 거리를 둘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먼 거리에 둘 수 있는 것은 떨어버릴 수 있습니다."
- Henri J.M. Nouwen, The Genesee Diary (New York: Doubleday, 1976), pp.180-181. Trans. Gene
Sunday, March 15, 2009
Eugene Meatyard오늘 내가 보고 느끼는 것을 내 사랑하는 친구들도 똑같이 보고 느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것임을 나는 안다. 이 세상에서 갖는 심오한 아름다움의 경험은, 변함없이 심오한 고독의 체험과 신비스러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생각을 할 때면 내가 아직 보지 못한 아름다움을 생각하게 되는데, 고독이 아닌 합일을 이끌어내는 아름다움 이 바로 그것이다.
- Henry J.M. Nouwen, The Genesee Diary (New York: Doubleday, 1976), p. 111.
Trans. Gene
Tuesday, February 3, 2009
1974년 7월12일, 금요일
바깥 세상에서 누군가 나를 생각하고 있겠지 하며
기대감을 가지고 편지통으로 향하는 한,
친구들이 나를 생각하는지
나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한 마음이 드는 한,
이 수도원에서 다른 수사들에 비해
뭔가 특별히 뛰어난 사람이고자 하는
남모르는 욕구가 마음속에 있는 한,
피정객들이 내 이름을 언급하는 환상을 품는 한,
수도원장이나 수사들 중 누구에게서든지
각별한 관심을 기대하는 한,
보다 재미있는 일을 하길 원하거나
좀더 자극적인 일이 있기를 원하는 한,
내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위한 작은 공간은 커녕
아예 작은 공간이 생길 미동조차도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
1974년 7월13일, 토요일
(…)
우리가 남다르려는 욕구를 버리고,
우리 자신은 특별한 배려를 받을
아무런 권리가 없는 죄인임을
체험적으로 알았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 각자의 이름을 부르시며
우리를 친밀한 관계의 자리로 초대하시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Henri J.M. Nouwen, The Genesee Diary (New York: Doubleday, 1976), pp.64-67.
trans. Gene
바깥 세상에서 누군가 나를 생각하고 있겠지 하며
기대감을 가지고 편지통으로 향하는 한,
친구들이 나를 생각하는지
나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한 마음이 드는 한,
이 수도원에서 다른 수사들에 비해
뭔가 특별히 뛰어난 사람이고자 하는
남모르는 욕구가 마음속에 있는 한,
피정객들이 내 이름을 언급하는 환상을 품는 한,
수도원장이나 수사들 중 누구에게서든지
각별한 관심을 기대하는 한,
보다 재미있는 일을 하길 원하거나
좀더 자극적인 일이 있기를 원하는 한,
내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위한 작은 공간은 커녕
아예 작은 공간이 생길 미동조차도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
1974년 7월13일, 토요일
(…)
우리가 남다르려는 욕구를 버리고,
우리 자신은 특별한 배려를 받을
아무런 권리가 없는 죄인임을
체험적으로 알았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 각자의 이름을 부르시며
우리를 친밀한 관계의 자리로 초대하시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Henri J.M. Nouwen, The Genesee Diary (New York: Doubleday, 1976), pp.64-67.
trans. Gene
Sunday, January 25, 2009
심연의 가장자리
심연의 가장자리
나의 존재 내 안에는 심연 같은 깊은 구멍이 있다—
심연처럼 깊은 구멍이.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나의 필요는 끊임이 없기 때문에
나는 그 구멍을 결코 메꿀 수 없을 것이다. 그 구멍은 메우려 해도 메워지지 않을 것이다.
구멍이조금씩 차츰차츰 닫혀지도록 좁아지도록
가장자리를 에돌며 손봐야겠다.
그 구멍이 구멍은 너무 크고 고뇌가고뇌는 극심하기 때문에 너무 깊어
항상그곳으로부터 그곳에서 도망갈 도망칠 유혹을 받을 것이다.
두 가지 극단적인 행동을 피해야겠다.
고통에잠겨 잠긴 나머지 고통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을 빼앗김을 피해야 하고 피하고
치유하고자 하는 상처를멀리하고자 하여 멀리하려고
여러 가지로마음을 흩뜨리는 것을 마음이 흩뜨러짐을 피해야 한다. 피해야겠다.
(헨리 나웬, The Inner Voice of Love: A Journey Through Anguish to Freedom, New York: Image, 1996, p.3)
There is a deep hole in [my] being, like an abyss.
[I] will never succeed in filling that hole,
because [my] needs are inexhaustible.
[I] have to work around it so that gradually the abyss closes.
Since the hole is so enormous and [my] anguish so deep,
[I] will always be tempted to flee from it.
There are two extremes to avoid:
being completely absorbed in [my] pain
and being distracted by so many things
that [I] stay far away from the wound [I] want to heal.
심연처럼 깊은 구멍이.
구멍이
가장자리를 에돌며 손봐야겠다.
항상
두 가지 극단적인 행동을 피해야겠다.
고통에
치유하고자 하는 상처를
여러 가지로
(헨리 나웬, The Inner Voice of Love: A Journey Through Anguish to Freedom, New York: Image, 1996, p.3)
There is a deep hole in [my] being, like an abyss.
[I] will never succeed in filling that hole,
because [my] needs are inexhaustible.
[I] have to work around it so that gradually the abyss closes.
Since the hole is so enormous and [my] anguish so deep,
[I] will always be tempted to flee from it.
There are two extremes to avoid:
being completely absorbed in [my] pain
and being distracted by so many things
that [I] stay far away from the wound [I] want to heal.
Tuesday, January 13, 2009
기다림의 힘은. . .
아무도 기다리는 사람이 없으면 삶을 지탱해나갈 수 없습니다.
길고 고된 여행길에서 돌아오는 사람은 지금,
기차역 혹은 공항에서
누군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하고 싶어합니다 –
집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그간에 있었던 고통스러웠던 순간들,
흥분되었던 순간들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싶어합니다.
1892년, 살인미수로 수감된 미국의 무정부주의자
알렉산더 버크먼은 밖에서 그를 기다리는 몇몇 친구가 없었다면
14년의 잔혹한 감옥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미쳐버렸을 것입니다.
(Alexander Berkman, Prison Memoirs of an Anarchist, New York, 1970)
1960년, 주유소에서 70달러를 턴 혐의로
‘소울대드’라는 중범 형무소에 수감되어,
1971년 탈옥을 시도하다 살해당한 조지 잭슨의 경우,
만일 그의 부모와 두 형제, 그리고 페이 스텐더라는 친구가
밖에서 그를 기다리며, 그가 쓰는 편지를 받으면서
그의 모든 편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답장을 해주지 않았다면,
그가 남긴 인간적인 내용의 감명적인 자료는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Soledad Brother, The Prison Letters of George Jackson, New York, 1970)
이처럼 사람은 자기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제정신을 잃지 않고 삶을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육체가 건강을 잃었을지라도
인간의 정신은 실로 육체를 다스릴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을 가까이 둔 어머니는
아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을 보기 전까지
죽음과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이며,
전쟁터에 나가 있는 군인은
아내와 자식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앎으로써
정신과 몸이 주저앉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무도 기다리지 않을 때,
삶을 지속하고자 하는 고투에서 살아남을 찬스는 없습니다.
(...)나는 당신을 놓지 않을 것입니다. 내일도 당신을 기다리며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나를 실망시키지 마세요.이웃에게 이렇게 말할 때,
내일은 더 이상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이 아닙니다.
기다리겠다고 말한 이웃을 통해서
내일은 실체가 되며,
기다리는 사람을 보고
삶에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
생명을 구하는 관계는 단시간에 형성될 수 없다고 말하며
기다림의 힘을 감소시키지 맙시다.
깊은 아픔에 잠겨 있는 사람에게
한번의 시선과 한번의 악수는
오랜 세월의 우정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영원할 뿐만 아니라,
단 한순간에 생성되기도 합니다.
Henri J.M. Nouwen, The Wounded Healer (New York: Doubleday, 1990), pp.66-67
집이란 무엇보다도 사랑과 행복의 공간이며 거꾸로 사랑은 집을 집으로 존재하게 하는 구성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이 없는, 또는 사랑을 잃어버린 집이란 더 이상 집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형도의 짧은 시 <빈집>은 사랑의 상실이 빈집을 ‘생산’하는 역학을 감상적이면서도 비의적인 언어에 담았다.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갖혔네
기형도 <빈집> 전문
최재봉, "간이역에서 사이버스페이스까지" (이룸, 2003), pp. 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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