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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May 6, 2009

[. . .] 정신적인 고통은 사실 끝이 없다. 한계선에 도달했다고 생각할 때마다 그 너머에는 더 많은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심연에서 심연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 . .] 나의 전 생애는 비할 데 없는 고통의 한 순간으로 응축되었다. 숨을 들이쉬었지만 모든 것이 캄캄해졌다.

- W. G. Sebald, The Emigrants (NDB, 1997), pp. 170-171.
Trans. Gene

Tuesday, May 5, 2009

[...] 플로베르가 글을 쓸 때마다 그를 따라붙으며 괴롭혔던 양심의 가책. . . 부정확한 표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는 아주 쓰라린 절충과 타협을 하지 않고서는 한 자도 더 쓸 수 없으리라는 공포 속에 한 번에 몇 주고 몇 달이고 계속 침상에 틀어박혀 있곤 했다 [. . .] 플로베르의 양심의 가책의 근원은 어디를 가든 끊임없이 눈에 띄는 어리석음의 만연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는 그 어리석음이 자신의 머릿속까지 침입했다고 믿었다. 마치 모래 속에 파묻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마 이러한 이유로 모래가 플로베르의 작품에서 그렇게 중요한 의의를 차지하는지 모른다. . . 모래가 모든 것을 정복했다. 낮이고 밤이고 플로베르의 꿈은 방대한 먼지 구름에 휩쓸렸다. 이 먼지는 아프리카 대륙의 건조한 평원에서 일어났고 지중해와 이베리아 반도를 지나 북으로 이동하여 마치 화재 후에 쌓이는 재처럼 루앙의 교외나 노르망디의 시골 마을에 내려앉아 구석구석 틈새를 찾아 들어갔다. 플로베르는 보바리 부인의 겨울 외투의 가장자리에 앉은 모래 한 알에서 사하라 사막 전체를 보았다. 플로베르에게 있어서 먼지 한 점은 무게에 있어서 아틀라스 산맥과 동등했다.

- W. G. Sebald, The Rings of Saturn (NDP, 1999), pp. 7-8.
Trans. Gene




1992년 8월 삼복 무더위가 끝나갈 무렵 나는 서포크 주를 걸어 돌아보기 시작했다. 긴 기간의 작업을 끝낼 때마다 나를 사로잡는 공허함을 쫒아버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사실 이 바람은 어느 정도는 실현되었다. 해안에서 내륙으로 길게 펼쳐지는 인적이 드문 시골을 하루에 몇 시간씩 걸으며 그렇게도 아무런 걱정근심이 없었던 적이 그때 이후로는 거의 없다. 그런데 지금 되돌아보면, 특별히 시리우스 별자리가 어떤 정신이나 신체의 가벼운 만성적인 병들을 유발할 수 있다는 오랜 미신에 무언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때 나는 익숙지 않은 해방감뿐만 아니라 마비적인 공포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 공포감이 나를 엄습한 것은 먼 과거로부터 유래하며 그 외딴곳에도 분명히 남아 있던 파괴의 흔적을 대할 때였다. 어쩌면 바로 이 때문에 내가 그 도보여행을 시작하고 정확히 1년 후에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不動 상태가 되어 노리지의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내가 마음속에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내가 그 전 해의 여름에 걸었던 서포크 주의 하늘이 내가 8층에 있는 그 방에 입실했을 때 이제 단일하고 막다른 비정의 지점으로 줄어들었다는 느낌에 얼마나 압도되었는지 정확히 기억할 수 있다. 실로 내가 내 침대에서 볼 수 있는 세상이라고는 그 창문 틀 안의 구름 한 점 없는 한 조각 하늘뿐이었다.

- W. G. Sebald, The Rings of Saturn (NDP, 1999), pp. 3-4.
Trans. Gene

Wednesday, April 8, 2009




만족스런 리듬을 얻기 위해서는 짧은 몇 마디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이 가운데 작가는 중력을 극복하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이탈하여 확실하지 않은 문자의 다리를 건너 맞은편 강둑에 이른다. 하지만 강둑에 닿으면 그곳에서 글자의 조류에 휩쓸려 나가고 또 휩쓸려 나가다가, 아름다운 모든 것이 그렇듯이,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있는 어떤 빛나는 지경에 다다른다. 그리고 작가는 마침내 절대적인 진리가 계시되는 문턱에 서는 느낌이 든다. 이 진리는 나보코프의 “세바스찬 나이트의 진실” 마지막 부분에서 볼 수 있듯이, 그 광채가 “눈부시며 dazzling” 그 완전한 단순함은 수수하며 세련되지 않은 단순함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것을 연동시키기 위해서 [. . .] 번지르르한 쇼는 필요 없다. 우리 머릿속에 갇혀 있어 항상 제자리에서 빙빙 맴도는 생각을 풀어주는 약간의 영적인 움직임이 필요할 뿐이다.

- W. G. Sebald, Campo Santo (The Modern Library, 2005), p. 146-147.
Trans. Gene

Tuesday, April 7, 2009




어떤 것들은 뜻하지 않게 불쑥, 종종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나타나기 마련이라는 느낌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뚜렷해진다.

기억이 파괴하는 남은 자취......
어떤 눈도 떨쳐버릴 수 없는 흐릿함.....
나의 옥수수 밭은 눈물의 낟알 옥수수.......

- W. G. Sebald, The Emigrants (New Directions, 1996), p. 23.
Trans. Gene.




충분한 집중을 기울임으로써, 이 지평선으로 너머로 가라앉은 시간의 풍경을 다시 볼 수 있다는 희망....... [이 희망은 글 쓰는 사람을 떠받쳐 더욱 높이 날도록 한다.]

시간을 멈추고자 하는 열망은 오랜 망각이 덮친 것들을 다시 정밀하게 불러일으킴으로써만 자신[열망]의 가치를 입증할 수 있다.

- W. G. Sebald, Campo Santo (The Modern Library, 2005), p. 145.
Trans. Gene

Thursday, March 26, 2009




나는 누군가 내게 가까이 오면 왜 외면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 그 이유를 오늘에야 알았네. 그렇게 외면해야지 내가 안전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았단 말일세. 그럴 때 나는 내가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괴물, 용납할 수 없는 인간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네.

- W. G. Sebald, Austerlitz (Modern Library, 2001), p. 125.
Trans. Gene




나는 부르주아의 생활에서 그랬던 것처럼 예술가들과 지식인들 가운데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네. 나는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비로소 개인적인 친분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 그러나 누군가를 알게 되면서 내가 너무 상대방에게 가까이 갈 때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어. 상대방이 내게 관심을 갖게 되면 나는 바로 뒤로 물러선 것이지. 나는 결국 극도의 일정한 예절을 통해서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했다네. 이 예절은 상대방을 생각해서라기보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옛날부터 해방되지 않은 절망감에 의해 나의 삶이 언제나 그늘져왔다는 사실을 내 자신이 무시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라네.

- W. G. Sebald, Austerlitz (Modern Library, 2001), p. 125.
Trans. Gene

Wednesday, March 25, 2009




나방의 삶과 죽음....... 더운 계절이 되면 그런 야행성 곤충이 작은 뒤뜰에서 심심찮게 집안으로 잘못 들어오네. 아침에 일찍 일어나보면 나방이 꼼짝 않고 벽에 들어붙어 있어. 나방들은 자기들이 길을 잃었다는 것을 안다고 나는 생각하네, 하고 아우슈털리츠는 말했다. 조심스럽게 잡아서 밖에 놓아주지 않으면 나방은 있던 자리에 꼼짝 않고 그대로 있을 거야. 몸에서 마지막 숨이 빠져나갈 때까지. 실로 나방은 죽은 후에도, 애초에 자기가 불행을 맞게 된 바로 그곳에 그대로 있을 것일세. 단말마로 경직된 작은 발을 단단히 움켜잡고 있던 곳에 말이야. 통풍이 불어 나방을 그 자리에서 떨어뜨리고 먼지투성이의 귀퉁이로 쑤셔 넣을 때까지 그대로 거기에. 가끔 우리 집에서 그렇게 최후를 맞은 나방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드네. 나방은 길을 잃었을 때 어떤 공포와 고통을 느끼는지 하고 말이야.

- W. G. Sebald, Austerlitz translated by Anthea Bell, 93-94. Modern Library, 2001.
Trans. Gene

Monday, March 23, 2009

확실히, 내 자신의 경험으로는, 모든 문제를 깨끗이 처리하고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어가는 것 같을 때 반드시 무슨 일이 또 생기고 내가 계획했던 모든 것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곤 했다. 세상 일이 그런 법이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착각은 35살 정도까지 상향 곡선을 긋다가 그 다음에는 멈추어버린다. 나는 이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다.

- W. G. Sebald
Trans. Gene

Sunday, March 22, 2009




진화론적인 용어를 빌자면, 우리 인류의 속성 가운데 하나는 절망의 종種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다. 우리는 마땅히 그리 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환경이 아닌 환경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발이 닿지 않는 물속에 들어가 허우적대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쫓겨나고 있는, 아니 우리가 스스로를 쫓아내고 있는 자연 세계와 우리의 두뇌세포가 만들어내고 있는 다른 세계의 경계선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그리고 분명한 것은 그 단층선이 우리의 육체와 감정의 구조를 꿰뚫고 지나간다. 지나간다는 것이다. 아마 이 단층선이 형성하는 단층면들이 서로 마찰을 일으키는 곳이 바로 고통의 근원지일지 모르겠다. 기억은 바로 그 현상의 하나다. 우리가 감정의 동물로 승인되는 것도 바로 그것 때문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탈출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우 잘 해내는데 - 그것을 억제하는 것이다. 운동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하는 것이 억제 수단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내 경우는 걷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기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사실 나는 벗어나고픈 큰 욕구는 없다. 우리는 가능한 한 고개를 쳐들고 똑바로 서서 그것을 헤치고 나가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 W. G. Sebald, The Emergence of Memory (Seven Stories Press: 2007), p. 56
Trans. Gene




내게는 기억도 사고력도 없었다.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내 인생은 끊임없는 흔적 제거의 과정이었다. 내 자신과 세상에 등을 돌리는.......

- W. G. Sebald, Austerlitz
Trans. Gene

Tuesday, March 10, 2009




삶과 죽음 사이의 상호 침투성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만큼 물샐틈없지 않다.
[T]he border between life and death is less impermeable
than we commonly think.

W. G. Sebald, Austerlit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