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pril 9, 2009
쓰기의 즐거움은 읽기의 즐거움과 통한다. 작가가 적절한 표현을 얻었을 때의 희열 bliss, 그리고 작가가 느낀 이 희열을 독자가 똑같이 느끼게 해주는 바로 그 적절한 표현. 만족스러운 작가와 고마워하는 독자는 같은 것이다.
예술가는 자신의 마음속에 이미지의 조합a combination of images을 암시해준 미지의 영향력the unknown force에 고마워하고 예술적인 독자는 이 조합에 만족감을 느낀다. 훌륭한 독자라면 일생에 좋은 책 몇 권쯤은 즐겁게 맛볼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와 독자, 양쪽이 모두 아는 즐거움을 분석할 필요가 어디에 있겠는가? 나는 주로 예술가들, 나와 같은 예술가들과 예술을 추종하는 예술가들을 위해서 글을 쓴다. 하지만 나는 내 문학 강의에서 어떤 학생들에게는 좋은 독서의 양상을 적절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 예술가의 책은 가슴으로 읽는 것도 아니고―가슴은 두드러지게 어리석은 독자다― 머리만으로 읽는 것도 아니다. 두뇌와 척추로 읽는 것이다.
“학생 여러분, 등뼈가 짜릿하고 설렘이 있으면 the tingle in the spine, 그것은 여러분이 작가가 느낀 것을 느낀다는 것이며, 작가가 글을 쓸 때 독자가 느끼기를 원하는 것을 여러분이 느끼고 있다는 표시입니다.”
나는 [내가 이런 말을 할 때] 대학의 학생들이 내게 대해 느끼는 것으로 보이는 동정의 구렁텅이abyss를 앞에 두고, 다시는 강의록 안으로 다이빙하고 싶은 심정이 되어, 강대상의 폭을 어림하게 될 것 같지 않다. [다시는 강단에 서고 싶지 않다는 말. 나보코프는 빠듯하게나마 생계를 위해 강단에 섰을 뿐, 아둔한 - 코넬 대학임에도 -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내가 아는 누구에게 위안이 될 만한 내용.]
- Vladimir Nabokov, Strong Opinions (Vintage International, 1990), pp. 40-41.
Trans. Gene
이것은 알빈 토플러Alvin Toffler가 1963년에 나보코프를 인터뷰한 내용이다. 이때 나보코프의 나이 64세였으며 롤리타 Lolita (1955)의 상업적인 성공으로 유럽 문학 강사로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스위스에서 창작을 하며 여생을 보내고 있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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