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vid Wojnarowicz
Arthur Rimbaud in New York
1978-79
위의 사진은 이에 대한 좋은 예를 제시한다. 먼저 사진의 모델이 쓰고 있는 마스크가 누구의 얼굴인지 알면 몰랐던 때에 비해, 보다 훌륭한 감상은 아닐지 몰라도 분명 다른 차원의 감상을 향한 지평을 열어준다. 그런 다음 배경의 벽에 씌인 낙서가 무슨 뜻인지 파악하고 이것의 출처가 무엇인지 알고 나면 그 지평에 들어서 다른 세계가 보이기 시작한다. ("마르셀 뒤셩의 침묵은 과대평가되어 있다." 이것은 독일 예술가 요제프 보이스의 시에서 취한 내용이다.)
문학 작품의 이해도 마찬가지다. 작품이 씌인 배경을 몰라도 정밀 독해로 깊은 감상이 가능하지만 그것을 알고난 뒤의 감상은 또 다른 차원의 이해와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배경으로 이해하면 다시 또 다른 차원이 열릴 수 있다. 최근 W. G. Sebald 를 파면서 새삼 확인하게 되는 사항들이다.
Arthur Rimbaud in New York
197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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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작품을 십분 이해하기 위해, 작가의 개인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작품의 창작 배경을 알 필요가 있다. 이런 말을 하면 끌로드 레비스트라우스 나 신비평주의자들은 발끈할 것이다. 물론 그들은 그들대로 타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나도 많은 부분 받아들인다. 그들이 위의 사진을 보면 독립적인 하나의 작품으로 삼아 나름대로 설득력있는 해설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감상으로 작품의 모든 면에 대한 감상을 남김없이 소진했다고 볼 수 없다.
위의 사진은 이에 대한 좋은 예를 제시한다. 먼저 사진의 모델이 쓰고 있는 마스크가 누구의 얼굴인지 알면 몰랐던 때에 비해, 보다 훌륭한 감상은 아닐지 몰라도 분명 다른 차원의 감상을 향한 지평을 열어준다. 그런 다음 배경의 벽에 씌인 낙서가 무슨 뜻인지 파악하고 이것의 출처가 무엇인지 알고 나면 그 지평에 들어서 다른 세계가 보이기 시작한다. ("마르셀 뒤셩의 침묵은 과대평가되어 있다." 이것은 독일 예술가 요제프 보이스의 시에서 취한 내용이다.)
문학 작품의 이해도 마찬가지다. 작품이 씌인 배경을 몰라도 정밀 독해로 깊은 감상이 가능하지만 그것을 알고난 뒤의 감상은 또 다른 차원의 이해와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배경으로 이해하면 다시 또 다른 차원이 열릴 수 있다. 최근 W. G. Sebald 를 파면서 새삼 확인하게 되는 사항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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